[경기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듣는 부의 품격] 길운생 ㈜성풍 대표

사업가로 성공 “직원·지역사회 도움 덕분”
겸손한 성품 존경받아… 인생철학은 ‘정직’
고교 시절 간호사 도움으로 결핵 완쾌 이후
모든 일 감사… 난치병 아동 후원·기부 습관
마스크 대란 때 5천만원 기부, 돌아보면 값져

올해 7월 경기도 261번째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한 길운생 대동공업여주대리점 ㈜성풍 대표가 판매하는 농기계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올해 7월 경기도 261번째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한 길운생 대동공업여주대리점 ㈜성풍 대표가 판매하는 농기계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전쟁으로 모두가 배곯던 시절, 이웃에 자신의 음식을 건넨 어머니의 나눔처럼 작은 선행이 모여 우리 사회가 더욱 따스해지길 희망합니다.”

여주에서 농기계를 판매하는 길운생 대동공업여주대리점 ㈜성풍 대표(75)는 올해 7월 경기도 261번째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하며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13년 연속 판매왕을 차지하고, 올해 역시 매출 100억원을 달성한 그는 사업가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겸손할 줄 아는 마음과 이웃을 배려하는 나눔 정신으로 더 큰 존경을 받고 있다. 6·25 전쟁 후 모두가 배를 곯던 시절, 잔치 허드렛일을 도와 받은 음식을 가난한 이웃에 나누어준 어머니를 보고 자라 대를 이어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길운생 대표를 만나 나눔의 미학과 행복의 가치에 대해 들어봤다.

■ 아너 소사이어티란?

사랑의열매의 고액 개인 기부 프로그램으로, 1억원 이상 성금 기부 또는 약정(5년 이내)한 사람들이 가입하는 클럽

 

함께 나누고 선행실천을 강조하는 길 대표가 직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함께 나누고 선행실천을 강조하는 길 대표가 직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Q. 올해 7월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했다. 당시 소회를 전해달라

A. 저의 오랜 동반자인 아내와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식에 참석해 연신 눈물을 훔쳤다. 그날 현장에서 75년간 살아온 저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모두가 어렵던 1950년대 이웃과 음식을 나누며 나눔철학을 가르친 어머니와 고교시절 결핵에 걸려 죽을 고비를 맞았던 순간 등이 떠올랐다. 그렇게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니 제가 받았던 은혜와 그 고마움을 갚고자 실천한 나눔을 통해 얻게 된 행복이 온전히 저 혼자 이룬 것이 아니더라. 사랑하는 가족과 회사 직원들, 다양한 지역사회 분들이 함께했다. 특히 대한농구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스포츠 발전에 기여한 한옥수 여사가 제 아내인데, 언제나 제 곁에서 저의 판단을 존중하고 지지해준 덕분에 오늘날 이 같은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Q. 나눔철학을 전해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달라.

A. 6·25 전쟁(1950~1953년)이 끝난 후인 1958년. 정확히는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무렵 때 일이다. 전쟁 후라 모두가 배를 굶주리며 힘들어할 때였다. 그때 하루는 어머님이 마을의 큰 잔치를 치르는 집에 가서 허드렛일을 하시고 품삯으로 양손 가득 음식을 얻어오셨는데 집에 오실 때 보니 음식들이 처음의 반의반도 남지 않았다. 어머니가 마을 어귀에서 굶주림에 지쳐 쓰러져가는 아이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온 것이다. 저는 어린 마음에 “우리 가족도 굶주리고 배고픈데 왜 어머니가 일하고 받아온 음식을 내어 주느냐”고 울먹이며 말했다. 그때 어머니께서 포근히 저를 안아주시면서 “우리에겐 잔치에서 받은 음식이 없어도 죽을 쒀 먹을 수 있는 곡식이 있지만, 저 아이들은 이 음식이 없으면 당장 죽을 수 있지 않겠니. 여유가 있는 우리가 먹을 것을 양보하자”고 달래셨다. 이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란 저는 남에게 베푸는 삶을 통해 더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Q. 나눔을 다짐한 일생일대 사건이 있다고 들었는데.

A. 고교 학창시절 집안사정이 여의치 않아 낮에는 회사 잔심부름을 하는 파트타임 일을 하고 밤에는 덕수상고 야간반을 다니다 보니 끼니를 거르는 일이 많았고 결국 영양 불균형으로 결핵에 걸렸다. 그래서 영등포 보건소를 방문했는데 저를 가엾게 여긴 보건소 한 간호사께서 저에게 유니세프가 지원하는 영양제를 남몰래 챙겨 먹이셨다. 이 같은 주변의 도움으로 고교 휴학 1년 만에 몸이 완쾌됐고, 그 덕분에 졸업 후 ㈜기아산업(현 기아자동차)에 취업하고 나중에 성균관대도 입학하게 됐다. 당시 도움이 없었다면 세상을 등질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모든 일이 감사했다. 그때부터 저는 수입이 생기면 일정 금액을 이웃을 위해 기부하는 습관이 생겼고, 이후 지역사회 난치병 아동을 위한 나눔도 실천하고 있다.

Q. 원칙과 신의를 지키는 사업가로 유명하다. 인생철학을 소개해달라.

A. 제가 가장 중요시하는 저의 인생철학은 정직이다. 정직은 신뢰를 바탕으로 쌓인다. 그런 측면에서 탈세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만약 세금을 많이 부과받은 사업자가 있다면 그 사업체는 매출이 높고 운영이 잘 된다고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하나 신중히 생각해봐야 한다. 사업이 잘되는 것이 대표인 자신이 잘나서일까. 절대 아니다. 많은 분의 도움이 동반됐기에 성과를 올릴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 도움에는 직원들과 지역사회가 반드시 포함된다. 그래서 내가 얻은 것들은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야 하고 우리 사회에 조금씩 환원해야 한다. 저 역시 이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틈이 날 때마다 지역사회 봉사활동이나, 복지·장학재단 기부 등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처음에는 이러한 나눔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기부의 소중한 가치와 의미를 널리 알려야 한다는 필요성에 공감하게 되면서 지금은 널리 알리려 한다. 나눔은 주변에 전파된다. 기부를 결심했다면 주변에 적극적으로 알리시길 조언 드린다.

Q. 코로나19로 어려워진 지역사회를 위해 5천만원을 기부하셨다.

A. 제 일생의 경험을 통틀어서도 코로나19는 전쟁만큼 충격적인 일이다. 온 국민이 생명과 직결되는 마스크가 부족해 길게 줄을 서는 모습을 언론을 통해 접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마스크 한 장에 4천~5천원으로 치솟았는데 이마저도 가계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에게는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5천만원이라는 성금을 기부하게 됐다. 5천만원이 절대 큰돈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리고 이 사회에는 큰 빛과 희망이 됐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보면 정말 값진 기부였다.

Q. 코로나19 장기화로 기부 문화가 얼어버릴까 염려되는데.

A. 제가 성균관대 총동문회 부회장 등을 맡게 되면서 동문과 소통하는 일이 잦은데 그때마다 꼭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나눔은 그 자체로도 가치 있는 행복이 되지만, 나눔이 선순환 돼 우리 사회에 더 큰 행복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저 역시 더 많은 기부를 한 후부터 개인적으로 사업체가 최고 매출을 달성하는 등 더 큰 성과를 창출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저에게 돌아온 큰 선물이 아닐까 싶다. 어머니가 예전에 나눔을 실천하며 저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엄마가 이렇게 주변 이웃에 나눔을 실천하는 건 언제가 너희가 나중에 더 큰 행복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란다. 그리고 이 믿음이 퍼져 나가면 우리 사회는 더욱 따뜻하고 아름다워질 거야” 그 옛날 먹을 것을 더 달라며 어머니께 울던 어린 아이에게 어머니께서 들려주신 나눔의 의미처럼 작은 실천과 행동들이 모여 우리 사회를 변화시켜 나가길 간절히 희망한다.

이광희기자 /사진=윤원규기자

■ 길운생 아너 프로필

- 現 대동여주대리점 ㈜성풍 대표이사

- 現 성균관대학교 총동창회 부회장

- 성균관대 경영행정대학원 졸업

- 덕수상고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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