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새로운 시작을 일컫는다. 하지만 새로운 시작은 그 전부터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새싹이 올라올 때 얼어 있던 그 겨울의 땅, 그 거대한 에너지는 이미 수개월 전부터 땅 밑에 흐르고 있다.
최근 글로연에서 출판한 그림책 <겨울별>은 혹독한 계절로 빗대어지는 겨울의 색다른 면을 담았다. 따스한 온기,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강한 에너지와 생명력이다.
물방울 같기도, 바람 같기도 한 청록빛을 띤 회색의 모형이 긴긴 잠에서 깨어나 나갈 채비를 한다. 노란 별을 가슴에 담고 가방엔 선물을 가득 넣어 긴 여행을 떠난다. “내가 오면 사람들은 겨울이 왔다고 해….” 그 정체 모를 모형을 향해 넌 누구냐고 묻는 말에 이렇게 답한다. “아마, 겨울?”
<겨울별>을 그리고 쓴 이소영 작가는 겨울의 또 다른 모습을 따스하고 신비로운 색채로 글로 풀어냈다.
이 작가는 29일 인터뷰를 통해 “겨울이란 계절을 삶에 빗대어 보면 혹독과 불행의 시기, 어둠 속에 모든 것이 묻히고 차갑게 얼어붙어 생명력을 잃어가는 계절로 비유되지만, 땅 밖으로 다시 나오기 위한 준비과정이 아닐까 생각했다”며 “아직 태어나지 않은 꿈틀대는 에너지를 품어내는 겨울을 담아내려 했다”고 말했다.
겨울이는 결코 자신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조용조용히 움직이고 사람들을 가만가만히 지켜보며 춥지만, 온기로 가득한 겨울을 바라본다. 이후 책의 중요한 서사가 시작된다.
겨울이가 혼자 남겨진 아이를 발견한 것. 엄마, 아빠가 ‘겨울이’가 태명인 동생의 출산을 위해 집을 떠나자 아이는 자신을 혼자 남겨두게 한 겨울이 싫다고 한다. 겨울은 그런 아이를 위해 함께 여행을 떠난다.
생명력이 움트는 겨울별을 여행하고, 돌아온 아이는 이내 새로운 생명인 동생과 엄마, 아빠와 따뜻한 겨울을 지낸다. 겨울이 품은 생명력과 동생의 탄생이라는 연결 고리가 인상적이다.
작가는 어둡고 힘든 과정을 견뎌낸 씨앗이 봄이 되어 하나의 생명으로 탄생하는 겨울의 에너지를 색채로, 글로 생생히 드러냈다.
“낮과 밤이 초저녁이 되는 하늘의 푸른 남색 빛에서 시작해 하나둘씩 건물에서 불이 켜지는 순간의 분위기를 담고 싶었다”는 이 작가의 말처럼 푸른색, 보라색, 녹색 등등의 색깔 번짐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마치 우주를 머금은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림을 보면 볼수록 새로운 단서를 찾는 재미도 있다. 마치 영화에 깔린 복선처럼 그림에는 앞으로 벌어질 다양한 의미와 이야기가 녹아있다. 작가의 의도가 제대로 책에 반영된 것.
이 작가는 “어두울수록 더 잘 보이고, 춥고 혹독할수록 더 오래가는 이 빛을 통해 겨울이 주는 의미를 그려내려 했다”면서 "그림에 다양한 의미들을 숨겨 넣고, 여러 번 되짚으며 색다르게 읽을 수 있는 그림책으로 만들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계절을 주제로 한 이 작가의 그림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전작 <여름>은 화려하고 적극적으로 활기를 치는 여름이라는 캐릭터를 생생하게 나타내며 독일 뮌헨의 국제어린이청소년 도서관이 해마다 선정하는 2021 화이트 레이븐스에 선정됐다.
화려한 색채와 생명의 신비로움은 물론 삶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이야기 등이 녹아있어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충분히 오랫동안 여운이 남을 그림책이다.
정자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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