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격렬한 논쟁 중 하나가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였다. 법안은 8월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유예기간은 2년으로 2023년 하반기부터 시행하게 됐다. 애초 모든 의료기관의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는 것이었지만, 결국 설치 대상이 전신마취 수술을 하는 의료기관으로 정해지며 상당수 의료기관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수술은 의식이 없는 상태로 폐쇄적인 공간에서 이뤄진다. 당연히 내 주치의가 직접 최선을 다해 나를 수술해줄 것이라는 신뢰가 바탕이 되야 하는데 그 신뢰를 깬 것은 의사들이다. 그동안 대리 수술이나 성추행 등 수술실 관련 범죄들이 발생하였을 때 처리되는 과정을 보면서 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의사에 대한 불신과 CCTV 설치 의무화 여론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처럼 의사-환자의 신뢰가 깨진 상황에서의 수술실 촬영은 본래 취지와는 다른 결과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수술하는 의사로서는 나의 행동이 감시당한다는 생각이 들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 방어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최선을 다해 수술했는데도 후에 나의 행위를 해명해야 한다면 잠재적 범죄자가 된 기분이 들면서 외과의사를 선택하는 후배들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환자로서도 CCTV는 알권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부 수술의 경우 신체 일부만 노출이 되지만, 더 많은 수술에서 전신이 노출돼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될 위험이 있다. 또한 수술 후 의료사고가 발생해도 영상자료는 결정적인 증거가 안될 가능성이 크다.
수술실 녹화의 숨은 쟁점은 수술 보조 인력이다. 일부 대형병원의 경우 전임의나 전공의가 보조 인력으로 일하며 수술의 일부 과정을 집도한다. 이런 경우 수술의 어느 부분까지 교육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란이 있다. 더 많은 병원에서는 보조 인력이 의사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명의 집도의가 수술실을 두세 방 열면서 일부 과정을 수술 보조 간호사(PA) 등에게 맡기는 경우가 있다. 전공의 특별법 시행 후 대형병원에서도 전공의가 없는 시간에 PA 간호사가 대신하고 있다.
정부와 의사협회와 병원협회는 PA 쟁점까지 논의하고 제도화해야 한다. 또한 대리 수술이나 수술실 성추행 등의 파렴치한 범죄에 대해 강한 법적 처벌 뿐만 아니라 의사면허 영구 취소 등 의사협회의 결단이 필요하다. 전국민 건강보험이 생기고 수십 년 동안 의사의 행위에 대해 낮게 책정된 의료수가의 문제를 더 많은 진료와 수술을 통해 원칙에 어긋난 방향으로 버텨온 문제가 이제 터지는 것이다. 정부와 의료계는 현실의 어려움을 인정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해야지 여론에 떠밀려 부족한 법안을 던져놓고 2년 안에 알아서 맞추라는 식의 해결은 무책임하다.
피범벅이 된 채로 수술을 마치고 그 결과에 상관없이 보호자에게 진심으로 ‘선생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 의사의 보람을 느끼게 된다. 돈을 받았으니 그에 맞춰 일하는 관계가 아닌, 나와 가족의 아픈 몸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고귀한 직업으로 남고 싶다.
이길재 가천대 길병원 외상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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