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사이다 발언은 대통령의 언어가 아니다

‘반짝 거품’ 언어, 대선판에서 계속 말썽..

‘바지 또 내릴까요’라 했다. 여배우 논란이었다. 이미 신체 확인까지 있었다. 그 질문이 또 나온 거다. 답답하니 한 얘기였을 게다. 하지만, 실언이 됐다. ‘초보운전 발언’도 있었다. ‘음주운전이 좋다’는 아니었을 게다. 하지만, 실언이 됐다. ‘오피스 누나’ 발언은 어땠나. 가벼운 위트라 생각했을 게다. 하지만, 실언이 됐다. 제일 컸던 건 ‘부산 재미없다’다. 부산에 일부러 욕하러 갔겠나. 하지만, 실언이 됐다. 말만 하면 실언이 된다.

오죽하면 ‘1일 1실언’이라 한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나. 이재명 무기는 ‘말’이었다. ‘말’로 여기까지 왔다. 촛불 군중 속에도 빛났다. ‘박근혜 구속하라’고 선창했다. 현직 대통령을 향한 구호였다. 사람들이 그를 주시했다. 아니, 말을 경청했다. 점차 빨려 들어갔다. 불필요한 형용사 생략, 거침없는 결론, 적중률 높은 예측…. 그에게 사람들이 별명을 줬다. ‘이재명 사이다 발언’. 그랬던 그가 지금 ‘말’로 몰린다. 기자 질문을 피할 정도다.

누가 진단했다. -대장동으로 궁지에 몰렸다. 지지율도 답보 상태다. 그 초조함이 말실수로 이어진다-. 이런 걸 분석이랍시고 내놓나. 틀렸다. 그의 말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화려하다. 여전히 상대를 약 올린다. 바뀐 건 언론과 국민이다. 분석하기 시작했다. 평가하기 시작했다. 전에는 재치 있는 말, 유머 섞인 말로 끝났다. 이제 그걸 분석하고 평가한다. 그리고 부도덕한 말, 반사회적인 말, 비통합적인 말이라고 결론 내린다.

답답할 거다. 그래서일까. 그제부터 언론을 탓한다. “요만한 것 같고 이만하게 만든다” “기울어진 (언론)운동장이다” 이 주장도 잘못이다. 여당 후보다. 방송 다수는 여당 편이다. 신문도 여당 편이 많다. 야당 쪽은 손에 꼽힌다. 신문이라야 서너 개다. 방송도 그 신문 종편이 전부다. 분포를 굳이 계측해보면, 여당 쪽에 기운 운동장이다. 그런데 왜 언론 탓을 할까. 아마도 본인의 말을 여전히 믿는 모양이다. 문제없다고 보는 모양이다.

너무나 모른다. 끝난 거다. 효력이 끝난 거다. 사이다 발언은 지사 때까지다. 그 후부터는 대통령의 언어다. 언론도 그 잣대를 갖고 기다렸다. 국민도 그걸 옳은 기준이라 믿고 있다. 그러니 놀라는 거다. ‘바지 또 내릴까요’-대통령의 언어가 아니다. ‘부산은 재미없다’-대통령의 말이 아니다. 언론도 알고 국민도 아는 이걸 이 후보만 모른다. 그렇다면 걱정이다. 계속 사이다 언어로 말할 건가. 그러면 ‘1일 1실언’ 논란 이어질 텐데….

가까이 윤석열 후보의 예가 있다. 그도 사이다 발언이었다. 시작은 국정감사였다. 여권 공세에 기죽지 않았다. ‘중상모략은 가장 점잖은 표현이다.’ 이 한 마디가 오늘의 윤석열을 만들었다. 본디 수사는 말싸움이다. 했다는 쪽과 안 했다는 쪽의 우기기다. 거기에 베테랑이다. 그런만큼 말을 잘했다. 자신감까지 넘쳤다. 그러다가 ‘1일 1실언’에 휘말렸다. ‘전두환 발언’이 최악이었다. 이제 달라졌다. 미리 써서 읽고 짧게 말한다.

말이라는 게 그렇다. 달변이 주는 건 감탄이다. 마음을 사는 건 감동이다. 표심을 쫓는 대선이 똑같다. 감탄 준 후보는 진다. 감동 준 후보가 이긴다. 2012년이 그랬다. ‘문 후보’는 달변이었다. ‘박 후보’는 눌변이었다. 문 후보 질문은 날았고, 박 후보 답변은 기었다. 문 후보가 이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여자를 너무 몰아세웠다’는 역풍이 불었다. 결국, 눌변 박 후보가 이겼다. 하물며 투박한 사이다 발언이다. 표 될리 없다.

집에 곶감 몇 개 달았다. 수정과 담글 계절이다. 계피 향기 그윽하다. 곶감 단맛이 따라온다. 잣 고소함이 마무리다. 바뀌지 않는다. 막 담근 동짓달에도, 얼음 덮인 섣달에도, 설날 제사상에도 그 맛 그대로다. 정이월엔 더하다. '규곤요람'까지 “…정이월 수정과”라 적었다. 그 이월 초 이레(음력)가 대선이다. 지금 담근 수정과는 그때까지 간다. 이 진득한 풍미를 사이다 거품이 당할 쏜가. 굳이 따지면 대통령 언어는 수정과에 가깝다.

이재명, 윤석열…. 저들도 사이다 발언 버리고 수정과 발언으로 가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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