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몸에 흐르고 있는 혈액량은 어느 정도일까? 30kg 어린이의 경우 2리터 정도이고 성인의 경우 4~6리터다. 그 중 20% 이상이 빠져나가면 생명이 위독하고 30% 정도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1~2리터의 출혈로 목숨을 잃게 되고, 시간으로 따지면 수십 분에서 수시간 내에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살 수 있는 기회라도 있다는 뜻이다.
적절한 치료란 응급수술이나 혈관조영술과 같은 지혈과정으로 이를 위해서는 외상외과 의사, 수술실, 집중치료실, 혈관조영팀, 마취팀 등이 항상 준비돼 있어야 한다. 개별 병원들 입장에서는 하루에 몇 명 되지 않는 이런 중증환자들을 위해 공간을 비워두고 인건비를 주는 것이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를 해결하고자 보건복지부는 2012년부터 전국 17개 시도에 권역외상센터를 지정하고 시설과 장비, 그리고 인력에 대한 지원을 하며 예방 가능한 외상사망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권역외상센터에는 외상외과 의사가 부족하다. 필자가 근무하는 인천권역외상센터의 경우 그나마 여건이 낫지만 일부 병원의 경우 외상외과 의사가 3~4명인 곳들이 있다. 그런 곳은 한 달에 24시간 당직 근무를 8~10번을 서야 하는데 의사들의 경우 당직이 끝나더라도 회진이나 컨퍼런스들로 바로 퇴근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지원자는 거의 없고 이미 일하던 사람들은 하나 둘씩 떠나는 걸까? 외상외과의사가 되려면 의사 면허를 취득하고 외과나 흉부외과 전공의 과정을 마친 후에야 시작할 수 있고, 외상세부전문의 과정이 추가로 필요한 전문적인 분야이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인건비가 대학병원의 초임 전문의들에 비해서는 적지 않지만, 경력이 누적되고 시간이 지나도 지원금의 변화가 없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밤과 주말에 병원에서 전공의 없이 일을 해야하는 상황들이 견디기 어려워진다.
병원 입장에서는 초기에 시설과 장비에 대한 지원이 있었지만 외상환자가 아니면 이용할 수 없는 제약 때문에 손해라고 느끼고, 장비가 노후화되어도 국가에서 지원하는 비용으로 추가로 구매할 수가 없다. 이러다보니 외상외과 의사들은 병원 내에서도 계륵과 같은 존재로 여겨지고 불편한 시선을 받게 된다.
의대생이나 초임 의사들에게 외과나 흉부외과는 대표적인 기피과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외상외과는 그 얼마 안되는 외과나 흉부외과 전공의들이 가장 하기 싫은 파트로 인식되고 있다. 정년까지 밤낮이 바뀌는 생활을 하며 언제 어떤 환자가 올지 모르는 불안함에, 최선을 다했지만 환자가 사망하는 경우들을 겪으며 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죽을 수 있었던 환자를 살릴 때의 보람과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사명감만으로 그들을 데려올 수는 없다. 지금까지의 지원으로도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는다면 그 방법과 규모를 바꿔야 한다. 수술할 의사가 없어서 우리 가족과 이웃들이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때 이병원 저병원 떠돌다가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일이 발생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길재 가천대 길병원 외상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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