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의 힘과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인간 고립이 가속화 하고 있다. 인간이 인간을 대면하는 것은 귀찮고 불편한 일을 넘어서 매우 위험한 일이 돼버렸다.
팬데믹 초기 우리 사회는 비대면의 업무와 일상생활에 준비되지 않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교육, 업무, 쇼핑 등에서 비대면의 새로운 플랫폼에 금세 적응했다. 심지어 대학 입학의 실기고사마저도 비대면 영상 시험으로 대체될 정도로 모든 것이 비대면의 상황에 빠르게 적응했다. 학생들도 비대면 수업을 대면 수업보다 더 선호한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직장에서도 굳이 일터에 나가서 모여 업무 하는 것보다 재택근무를 통해서도 충분한 업무 성과를 낼 수 있음을 알게 됐다.
비대면에 적응해 가면서 새로운 산업이 부흥하기도 했다. 심지어 공연도 영상 플랫폼으로 제작돼 온라인으로 배포되고 있다. 영상으로 전달되는 공연을 하나의 새로운 장르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
이런 현실에서 이제는 단순히 이야기를 듣기 위해 관객이 극장에 오지 않는다. 너무도 많은 서사가 손안의 스마트폰에서 감상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고 그 많은 이야기는 인간의 여가를 채워주는 도구로 전락했다. 앞으로는 이러한 추세가 더욱 가속화 되리라 여겨진다. 굳이 불편하게 극장에 가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원하는 공연과 이야기를 맘껏 누릴 수 있는 시대에 직면한 것이다.
연극은 이러한 현실을 마주해 점차 그 존재의 필요성마저 의심받고 있다. 인간이 인간과 마주하는 일 자체가 원시적으로 보이는 현실에서 연극은 아직도 인간이 인간을 대면해야만 성립되는 원시적인 예술이다. 아무리 연극을 영상으로 잘 담아 전달하더라도 연극의 본질은 현장성이고 의미 생산과 교류를 직접 해야 이뤄져야 성립되는 예술임에는 분명하다.
연극의 본질에는 인간의 만남이 전제된다. 비대면을 넘어서 대면의 전제 속에서 성립되기 때문이다. 이런 연극의 고유한 특성은 극단적으로 고립이 가속화 돼가는 인간에게 연극은 인간 대면의 기회를 만들어 준다. 연극은 고독과 고립에 처한 인간을 구원해야 할 사명이 있다. 그것이 연극 존재 이유다. 연극만이 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연극이 고독의 시대에서 인간을 구원할 유일한 이유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연극은 어떤 연극이어야 할 것인가? 그리고 연극이 살아남아 인간 고립의 구원자로서 역할 할 수 있도록 존재하기 위해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야 할까? 연극 존재 이유를 고민하고 연극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동시대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물음을 고민해야만 할 것이다. 나아가 연극 원형을 탐구하고 또한 새로운 방식으로 연극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연극만이 가능한 모든 것을 고민하고 연극의 원형을 탐구하며 연극의 영역을 확장해야만 연극이 동시대에 연극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라 생각한다. 팬데믹의 터널을 어느새 나오면 우리는 더욱더 고립돼 있을 텐데 그 터널의 끝에서 연극이 할 수 있는 일과 사명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때를 지금부터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다.
구태환 수원시립공연단 예술감독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