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화석정, 보전 넘어 복원으로

차문성 파주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장

올해 초 화석정 인근 80m에 군벙커가 들어서자 시민단체들이 앞장서 화석정의 온전한 보존을 외쳤다. 얼마 전 군부대와 파주시의 협의에서 군벙커 시설은 전망대로 전용하고 차선 확보, 주차장 시설 확충으로 결론을 지었다. 기존 군 시설물에는 파주시 문화유산 지도가 그려지는 등 민관군 거버넌스의 모범적인 사례가 되었다. 근래 들어 각 지자체에서는 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 복원정비사업에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 역사문화도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에 화석정이 가진 의미를 되새기면서 민관군의 상생을 말해볼까 한다.

화석정이 온전히 복원되돼 할 이유는 수없이 많다. 지금도 널리 유포돼 있는 구비설화, ‘임진왜란과 율곡의 선견지명’은 화석정이 파주시민만의 것이 아니라 일제에 항거한 우리의 민족정신이며 자존심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율곡 선생이 어떠한 분이기에 8년 뒤를 예견한 전설이 불현듯 나온 것일까. 기호유학 종장으로의 율곡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의 마지막 삶은 마치 죽은 제갈량이 산 중달을 이긴 것과 같았다. 율곡은 경연에서 양병설을 주장했고, 죽음을 앞두고는 북변으로 가는 서익에게 육조방략을 주어 나라의 안위를 염려했다. 이런 이유로 화석정 스토리는 일제강점기 때 각색돼 민간에 유포될 수 있었다. 최초의 기록은 1923년 조선일보에 언급됐고, 1929년과 1932년 동아일보 파주지국장인 홍천길의 기사에 지금과 같은 설화가 소개됐다. 화석정에 관한 율곡의 이야기는 단순히 구비설화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일제에 항거한 민족의 자존심과 역사의식에 관한 것으로 그 중심에 바로 율곡과 화석정이 있는 것이다.

임진왜란과 6<2022>25 때 두 번 참화를 겪은 후 1966년 지역 유림의 성금으로 중건됐다. 의주길에 있는 화석정은 무려 300회나 시문집에 언급돼 건물의 주변 경관만이 아니라 율곡의 도학과 애민정신이 남겨진 곳임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화석정은 파주시가 계획한 디지털전시관 외에도 화석정의 올곧은 복원 건물을 통해 교육과 체험, 활용의 장소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 현재 37번 국도의 소음으로 인해 별서정원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바라건대, 공원형 지상터널을 만들어 꽃과 괴석이란 본래 화석(花石)의 의미를 되살리는 것이 진정한 거버넌스일 것이다.

차문성 파주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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