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이야기 : 죽음의 급식실, 아픈 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학업에 열중하는 아이들을 위해 맛있는 밥이 지어지는 학교 급식실, 그곳에서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급식실의 열악한 환경이 세간에 알려진 건 지난 2017년 4월 수원 권선중학교에서 근무하던 조리실무사가 원발성 폐암 3기 진단을 받고, 그로부터 1년 만에 숨을 거두면서였다. 그의 죽음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된 건 다시 3년이 흐른 올해 2월, 그 사이 수많은 급식종사자가 쓰러져 나갔지만 대책 마련은 요원하다. 경기일보는 급식실의 실태를 낱낱이 조명하고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교육 당국이 노동자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도록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1. 밥 짓다가 골병 드는 급식종사자
학생들이 등교 준비에 한창일 시간, 시곗바늘이 오전 8시를 가리키면 20㎡ 남짓한 학교 급식실에선 ‘죽음의 노동’이 시작된다.
매일 아침 들어오는 고기, 야채 등 재료를 검수하고 나면 조리에 앞서 원재료를 다듬거나 세척하는 전처리 작업으로 이어진다. 급식종사자 대부분이 중년 여성인 만큼 수많은 식재료와 수백명의 학생들이 사용할 식기를 나르는 것부터 여간 고된 일이 아니다.
포천시의 한 중학교에 근무하는 21년 경력의 베테랑 조리사 심영인씨(57ㆍ가명)는 버거운 무게의 물건들을 매일 들어올리다 결국 엄지와 검지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엘리베이터 출입구에 낀 카트 바퀴를 밀어내려다 다친 허리도 매일 밤 그를 괴롭힌다.
심씨는 매일 430명의 끼니를 만들어야 한다. 수능 이후 본격적인 전면 등교가 이뤄지면 밥을 먹을 학생들은 650명까지 늘어난다. 함께 일하는 동료는 5명, 한 사람이 최대 109명의 식사를 책임지는 셈이다. 공공기관에서 조리사 1인당 평균 식수 인원이 57명인 것과 비교하면 2배에 달하는 업무량이다. 심씨는 “큰 솥에 담긴 음식에 삽질을 하다 보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픈 게 일상”이라며 “일과를 마치고 정형외과에 가면 주변 학교에서 일하는 조리사가 모두 모여 ‘정모’라고 할 정도”라고 털어놨다.
본격적인 조리가 시작되면 급식종사자의 고통은 배가 된다. 학교급식법상 조리 후 2시간 내 배식을 해야 하는데, 코로나19 이후 시차 배식이 이뤄지는 탓에 끼니마다 2~3번에 걸쳐 음식을 준비해야 한다. 조리 과정은 몸속까지 치명상을 입힌다. 주범 조리흄(cooking fumes)은 학생들이 좋아라 하는 튀김이나 볶음 등의 메뉴를 조리할 때 모습을 드러낸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기름을 사용하는 튀김 요리에서 발생하는 배출물질의 일종인 조리흄을 발암물질로 분류했다. 안양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22년간 일해온 정혜경씨(63ㆍ가명)도 지난 2016년 여름 급성폐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조리가 끝나도 위험은 계속된다. 수백명이 식사를 마친 식기들을 설거지하는 일 자체도 노동 강도가 상당하지만, 기름기를 쉽게 제거하기 위해 쓰는 1종 세제의 독성도 위협적이다. 조리기구와 솥을 닦을 때 쓰는 세제, 바닥을 소독할 때 사용하는 약품에 뜨거운 물을 끼얹으면 유해화학물질인 수산화나트륨이 기체 형태로 급식종사자의 몸속까지 스며든다.
그러나 온몸으로 죽어가는 급식종사자의 산재를 판단해줄 법적 기준이나 정기적인 건강검진 따위는 없다. 밥을 열심히 지었을 뿐인데 암에 걸려버린 이들에겐 아픈 이유를 증명하는 것도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2. 걸려도 호소할 데 없는 ‘직업성 암’
“우리가 아픈 것도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업무 강도보다 위협적인 문제는 급식실 노동이 이른바 ‘직업성 암’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현행법은 암과 업무 간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으면 보상하도록 규정한다. 그럼에도 급식종사자 대부분은 산업재해 신청마저 망설인다. 공사 현장이 아니라 급식실에서 ‘밥을 짓는 일’은 산재 정책에서 소외돼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이하 학비노조)은 지난달 전국 유치원과 초ㆍ중ㆍ고등학교 급식종사자 5천365명(여성 5천34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를 공개했다. 조사 결과, 급식실 근무 이후 폐암 진단을 받았다고 응답한 건 189명(여성)으로, 약 3.5%의 비율을 보였다. 이는 일반인(여성) 기준 폐암 발병률의 24.8배에 달하는 수치다.
지난 2018년 폐암으로 숨진 급식종사자도 지난 2005년부터 2017년까지 수원 권선중학교에서 조리실무사로 근무했던 여성이다. 튀김이나 구이 등 요리를 위해 고온의 열기 속에서 하루에만 수시간씩 조리흄을 들이켰던 그는 지난 2017년 4월 원발성 폐암 진단을 받고 이듬해 4월 숨졌다. 유족들은 같은해 8월 근로복지공단 수원지사에 산재보험 유족급여 신청서를 냈고, 꼬박 3년 만인 올해 2월에서야 업무상 질병을 인정받게 됐다.
이 밖에도 조사에 참여했던 5천365명 중 96.3%(5천166명)는 ‘최근 1년간 근골격계 질환으로 인한 통증을 일주일 이상 느꼈다’고 응답했고, 74.7%(4천5명)는 ‘최근 1년간 근골격계 질환으로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변했다. 치료 경험자 중 73.6%(2천947명)는 자비를 들여 치료비를 충당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 이유로 53.3%(2천136명)가 ‘산업재해에 해당하는지 판단하기 어려워서’라고 응답했다. 끝내 산재를 신청해서 인정받은 비율은 고작 1%에 불과했다.
최진선 학비노조 경기지부장은 “가장 시급한 것은 식수 인원 대비 인력 배치의 기준”이라며 “근본적으로 너무 적은 인원이 너무 많은 양의 음식을 하다 보니 과다한 조리흄을 흡입하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
학비노조는 산재를 당하고도 피해를 회복하지 못하는 급식종사자를 위해 집단산재 신청에 나서고 있다. 올해 6월에는 급식종사자 28명(경기 11명), 지난 9월에는 19명(경기 7명)이 산재 신청에 참여했다. 경기지역 18명 중 15명은 10년 이상 급식실에서 근무한 이력이 확인됐고, 병명은 폐암ㆍ유방암ㆍ직장암ㆍ혈액암ㆍ갑상선암 등으로 다양했다.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은 “조리흄은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정한 1급 발암물질로, 근로복지공단에서도 인정하고 있다”며 “급식실에서 일하는지, 일한다면 얼마나 일했는지 따져보면 폐암과의 연관성을 확인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세제에서 나오는 유해물질과 암의 연관성도 연구가 필요하지만, 우리나라는 지금 그 유해성에 대한 확인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교육 당국은 급식종사자에 대해 일종의 사업주 개념인데, 선제적으로 문제를 발굴하기 보다는 고용노동부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손을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3. 헛바퀴 구르는 실태조사, 급식실 고통 외면하는 교육 당국
학교 급식실에서의 노동이 죽음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교육 당국은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기도교육청은 관내에서 첫 산재 인정 사례가 나오자 지난 5월 뒤늦게 도내 학교 2천363곳에 대한 전수조사 계획을 세웠다. 급식실을 점검하고 공조설비 등을 단계별로 교체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는 학교별로 자체 점검하는 형태였고, 당시 조사에서 문제가 있다고 판단돼 개ㆍ보수가 진행된 학교는 163곳(6.9%)에 불과했다.
현장에선 불만의 목소리만 터져나왔다. 학비노조 소속 급식종사자 임숙현씨(52ㆍ가명)는 “조리 과정에서 매연이 발생하고 청소 과정에서 독한 세제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학교에서 점검하는 건 모든 작업이 끝난 뒤였다”며 “시설 개선을 요청해도 ‘코로나19 때문에 어렵다’, ‘예산이 부족하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도교육청은 학교 예산이 모자라면 각 교육지원청에서 신청을 받아 적극 지원하고, 대단위 예산일 경우 도교육청 차원에서 예산을 수립하겠다면서도 명확한 기준이 없어 선제적인 조치를 취하는 건 어렵다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에서 연말까지 학교 급식소 표준 후드 환기방안 등을 마련할 예정인데, 그 기준에 맞춰 다시 조치하겠다는 게 도교육청의 계획이다.
결국 기준이 만들어질 때까진 사실상 손을 놓고 있겠다는 셈인데, 이미 경기지역 학교 급식실의 실태는 엉망으로 드러났다.
지난 5~6월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 노동자건강증진센터에서 도내 학교 8곳을 점검한 결과, 가평중학교와 고양 한류유치원 급식실에선 아예 일부 후드가 고장난 상태였다. 또 산업안전보건공단이 규정하는 제어풍속은 0.5m/s이지만, 개구면이 아닌 호흡기 지점에서의 풍속이 0m/s로 측정되기도 했다.
환기 상태가 엉망이다 보니 부천 고강초등학교 세척실에선 22~29ppm 수준의 일산화탄소(법정기준치 30ppm)가 측정됐고, 고양 풍동초등학교에선 메추리알 조림 작업 중 창문을 열고도 4.4ppm(법정기준치 0.3ppm)의 포름알데히드가 계측됐다.
급식종사자의 건강 관리에 대한 대책도 현재까진 준비된 게 없다. 올해 3분기 도교육청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선 ▲작업환경 측정 ▲급식실 종사자 폐암 방지 건강진단 ▲각급 학교 산업안전보건 업무 범위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으나, 모두 ‘계속 협의한다’는 결론만 나왔다. 오는 12월 4분기 산안위에서 최종 의결이 이뤄질지도 현재로선 미지수다.
경기도의회 박옥분 의원은 “학교가 처한 실태를 면밀하게 파악해야 더 이상의 피해를 막을 수 있으나, 도교육청은 급식종사자의 인권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인력 보강은 물론 도내 전체 학교를 대상으로 작업환경 측정과 특수 건강진단을 조속히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희준ㆍ김정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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