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집에서 휴식을 취하던 40대 남성이 갑자기 온몸에 경련을 일으켜 119에 도움을 요청했다. 곧바로 출동한 119구급대는 환자를 이송해 인근 병원으로 향하던 중 ‘수용불가’ 통보를 받았다. 분초를 다투는 순간 구급차 안 구급대원은 물론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상황실에서도 환자 이송이 가능한 병원 찾기에 나섰다.
40분 이상 흐른 뒤에야 다른 지역 소재 병원에서 수용이 가능하단 연락을 받고 구급대가 병원에 도착했지만, 끝내 환자는 사망했다. 당시 환자 수용을 거부했던 병원은 무려 34곳. 격리실이 없다는 이유로, 중환자실이 없다는 이유로, 경기도는 물론 서울과 충남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병원들이 환자를 받지 않아 벌어진 참사였다.
21세기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세계 최고의 의술을 자랑하는 나라에서 믿기 힘든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국가공무원인 119구급대원이 구급차로 이송하는 응급환자를 병원마다 갖가지 이유를 대며 문전박대하는 것이다. 환자를 골라서 받는다는 표현까지 나올 정도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는 코로나19 대확산으로 병원 수용거부가 더욱 기승을 부리자, 지난 6월 의료기관 수용거부 대응 전담조직(TF)을 꾸리고 증거 수집을 위한 수용거부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3만3천695건. 경기지역 응급의료기관이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4개월간 수용거부한 건수다. 월평균 8천423건, 하루에만 280건의 수용거부가 경기도에서 발생하고 있다.
수용거부 사례를 깊이 들춰보면 더욱 가관이다. 생(生)과 사(死)의 경계에 있는 환자를 우선 살리고 봐야 하는데 격리실ㆍ입원실 부족부터 ‘보호자가 없다’, ‘진료비를 미납한 적이 있다’ 등의 이유를 대고 있다. 심지어 여유 병상이 있음에도 병상이 없다고 거짓 정보를 제공한 병원까지 있었다. 환자의 생명은 안중에도 없는 것인가.
경기도소방재난본부와 병원 소재 소방서장들은 지난 여름부터 병원들을 찾아다니며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또 응급의료정보를 관리하는 국립의료원과 의료기관을 관리ㆍ감독하는 경기도, 일선 시ㆍ군 보건소에 병원 측의 부적절한 수용거부 사례를 통보하고 위법ㆍ부당사항 조치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의료기관 수용거부는 비단 경기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라도 정부와 국회가 적극 나서 환자 수용거부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주길 간곡히 요청한다. 경기도 소방재난본부도 응급환자 전문 구급 장비를 확충하고 구급대원 전문역량 강화 등을 통해 병원 전 단계 응급의료 전문기관으로서의 119구급대 위상 제고를 위해 노력해야 할 때다.
안기승 경기도소방재난본부 구조구급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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