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역사적 관점에서 코로나와 공공복지

지난 2019년 우한에서 첫 감염자 확인, 같은 해 12월31일 WHO에 보고, 지난해 1월20일 국내 중국인 여성의 첫 감염자 확인. 그리고 1년10개월 정도 지나는 사이 세계적으로 환자가 2억3천8백만여명에 사망자는 486만여명에 이르렀다.

한국도 확진자 33만1천여명에 사망자 2천500명이다. 이렇게 코로나19는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세계 전체로 퍼져 나가면서, 모든 이의 일상을 바꿔놓고 말았다. 누구든 다 걸릴 수 있는 범유행이 된 것이다. 코로나19가 미친 영향은 매우 크지만, 특히 공공복지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계기가 됐다.

인간이 생겨난 이래 바이러스 없이 산 적은 없었다. 다만 몰랐을 뿐이다. 14세기 7천5백만에서 2억명(유럽 인구의 30~60%)의 사망을 초래한 흑사병이 처음 발생한 곳도 1300년대 중국과 인근 중앙아시아였다. 비단길 타고 1343년쯤 크림반도에 닿았고, 쥐에 기생하는 벼룩을 매개로 1346년 지중해를 거쳐 이탈리아에 도착해 유럽 전체로 퍼졌다. 발생지에서 이탈리아에 도달하기까지 최소 10년 이상, 다시 이탈리아에서 북부유럽까지 퍼지는 데도 5년이 걸렸다. 병에 걸리지 않았는데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원인을 모르니 무섭고, 그 공포를 해소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자니 속죄양이 필요했고, 가장 손쉬운 대상이 유대인이었다. 우물에 독을 풀었다느니 하면서 닥치는 대로 죽였다.

스페인을 필두로 아메리카에 들어간 사람들에 묻어간 역병으로 5천만 명 가까이 죽었다. 아메리카 인구가 약 6천만명(당시 세계 인구의 10%)이었는데, 식민지화가 끝나고 나서 5~6백만 명으로 줄었다. 인구가 줄어드니 농사짓던 땅도 숲과 풀밭이 되고 대기 중 이산화탄소마저 감소했다. 그 결과 전 세계 기온이 떨어져 소빙기가 시작됐다. 유럽은 흉작과 기근으로 또 사람들이 죽어갔다.

조선시대 1392~1864년까지 1천400여건의 역병이 있었다. 전염병이 생기면 활인서나 혜민서를 통해 약제를 지급했다. 하지만 약값이 비싸고 구하기 어려워서 사람 많은 곳에 다니지 않는 게 최우선이었다. 왕은 감염자의 강제 격리와 함께 하늘의 노여움을 푸는 제사를 지냈다.

전염병 대처에서도 남다른 왕이 바로 정조였다. 정조 10년 한양에 홍역 유행의 조짐이 보이자 왕실용 약제인 안신원(安神元) 2만7천 환을 대궐 내외 각처에 공급하고 왕실 금고 내탕금으로 그 비용을 감당했다. 국가 재정 지출의 범위를 넘어서까지 선제 대응한 역사적 사실을 되새긴다. 백신 도입 문제, 선별이니 보편이니 하는 논쟁 장면들이 복지를 전공하는 학자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저 안타깝다.

사회의 쇠퇴나 문명의 몰락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 요인 때문이다. 공공복지는 미래를 위한 투자다. 복지를 아직도 비용으로만 보려는 시각부터 고쳐야 하겠다.

김근홍 강남대 교수ㆍ한독교육복지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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