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께서는 하루에 몇 잔의 커피를 드시는지 궁금하다. 필자는 두 잔 정도 마신다. 어느 통계를 보니 우리나라의 1인당 커피 소비량은 1.4잔으로, EU 다음 수준이다. 그래서인지 어딜 가나 커피를 마실 수 있다. 100원짜리 동전 넣고 빼먹던 커피 자판기는 사라진 지 오래다. 커피 품질이나 값도 장난이 아니다. 두 세 잔이면 교과서 한 권 값이다. 수업 때마다 커피는 한 잔씩 들고 오면서, 정작 교과서는 돈이 아까워 안 사는 학생도 있다.
커피 주문해놓고 기다리다 보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말 “커피 나오셨습니다!”. 손님보다 커피가 대접을 받는 세상이다. 커피가 아무리 좋기로서니 “커피 나오셨습니다!”가 뭐람? 그뿐이 아니다. “만원이세요”, “그 커피는 없으세요”, “카드는 안 되세요”, “아메리카노세요” 이런 말들이 에스프레소처럼 내 입맛을 쓰게 한다.
아르바이트 하는 제자들에게 이런 말 쓰지 말자 했더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손님들이 싫어한단다. 그런데 한국 식당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외국 유학생들은 이런 말을 별로 안 쓰는 것 같다. 한국어능력시험 준비하며 배운 대로 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누가 이런 엉터리 존대어를 퍼뜨렸을까. “-시-”는 사람을 높여주는 표현법이니 제발 사람에게만 붙여 주기를 바란다.
프랑스에 이런 커피점이 있다고 한다. 손님의 주문 표현에 따라 커피값을 다르게 받는다. “어이, 커피 한 잔!” 이렇게 주문하면 우리 돈으로 1만원을 받는다. 그런데 “커피 한 잔 주세요!” 하면 6천원, “안녕하세요? 커피 한 잔 주시겠어요?” 하면 3천원만 받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느 커피 체인점이 이런 할인 이벤트를 한 적이 있다. 좋은 시도라 생각한다.
가끔 뉴스에 ‘진상 고객’이 소개되곤 한다.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사람을 전화로 대하는 콜 센터, 직접 대하는 은행 창구, 고속도로 통행료 접수 창구의 여성 직업인들이 언어폭력과 성회롱으로 상처를 많이 받는다고 한다. “사랑합니다, 고객님!”으로 시작하던 KT의 안내 목소리도 그래서 사라졌다. 사람을 상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들도 그래서 많이 힘들어한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상대방은 어떻게 느낄까?” 이런 역지사지의 공감이 아쉽다.
서비스를 받는 고객은 왕이고, 서비스 제공자는 종이라는 생각은 이제 접어야 한다. 모두가 존중받아야 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 그리고 이런 말도 자주 쓴다. “저한테 여쭤보신 분”, “제가 호명하신 분”, “제 이름은 ‘김 자, 한 자, 솔 자’입니다”…그런데 이런 말들은 남이 아니라 자신을 높여주는 표현이니 고쳐 써야 한다.
대박·먹방·김밥 등 한국어 낱말 스물 여섯 가지가 최근 영국의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표제어로 새로 올랐다고 한다. 우리 말과 글은 한류 문화의 씨앗이다. 우리에게 훌륭한 말과 글이 있음을 자랑스러워 하며 잘 가꿔나갔으면 한다. 사물보다 사람을 존중하고, 나보다 남을 존중하는 배려의 말들이 우리 삶 속에 넘쳐나기를 기대하며, 독자들께 영화 ‘말모이’ 시청을 권한다.
이의용 전 국민대 교수(생활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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