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세상, Today] 부모도 세상도 등돌린 우리, 누가 품어주나

첫 번째 이야기 : 베이비박스 그 후, 시설로 향하는 유기아동

14일 오후 군포 새가나안교회 앞 베이비박스에서 이기동 목사가 과거 구조됐던 아동의 사진을 들어보이고 있다. 조주현기자
14일 오후 군포 새가나안교회 앞 베이비박스에서 이기동 목사가 과거 구조됐던 아동의 사진을 들어보이고 있다. 조주현기자

2천595명. 최근 10년간 부모의 품을 떠나 버려진 아이들의 숫자다. 여섯 중 하나는 경기도에서 유기됐다. 그 사이 군포 새가나안교회의 베이비박스는 140명의 숨결을 지켜냈다. 갖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 생명을 구하는 것은 세상을 구하는 것과 같다는 탈무드의 한 글귀는 베이비박스가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잘 나타낸다. 문제는 그 다음, 대부분의 아이들이 집단시설로 흩어지며 다시 한 번 사회로부터 외면받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아동은 가정보호가 우선돼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도 책임을 방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일보는 베이비박스를 통해 유기 실태를 진단하고 국가와 지방정부 차원의 대책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8월12일 오전 9시45분 출생. 몸무게는 3.64㎏, 태명은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도담’이라 지었습니다. 우리 모자의 아픔을 받아주세요. (중략) 예쁜 도담아, 함께했던 일주일 동안 큰 행복만 주고 이렇게 이별하는구나. 너무 많이 미안해. 죽도록 미안해. 어딜 가도 건강하고 사랑받는 아이가 되길 기도할 거야...

14일 낮 군포시 산본동의 새가나안교회.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는 교회 정문에는 커다란 하트가 그려진 베이비박스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곳에는 지난달 17일 한 장의 편지와 함께 태어난지 닷새 만에 엄마와 생이별한 갓난아기가 뉘여졌다.

말없이 편지를 읽던 이기동 목사(62)는 “베이비박스는 버려지는 아이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며 “가출 청소년이 미혼모가 되고, 미혼모가 낳은 아기가 다시 불안정한 환경에서 자라거나 유기되는 굴레를 끊기 위해 시작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소년원과 교도소, 중국에서의 청년사역을 통해 미혼모와 유기 아동이 생겨나는 과정을 목격한 이 목사는 지난 2014년 5월 베이비박스를 설치했다. 첫해 28명의 아이들이 버려졌고 올해 들어서는 도담이까지 7명이 박스 안에 놓였다. 이렇게 지켜진 140명 중 친부모에게 돌아간 건 단 2명, 나머지는 일시보호소에서 머물다 시설로 보내졌다. 성도들이 나서 위탁이나 입양을 시도했지만, 20명 남짓이다. 24시간 교대 근무로 보살핌을 받던 도담이도 지난달 25일 경기남부일시보호소로 떠났다.

 

8년간 140명 지켜, 대부분 시설로

버려지는 아동 위한 정책 마련을

슬하에 30대의 장성한 두 자녀를 둔 김영자 권사(57ㆍ여)는 지난 2015년 11월 ‘사라’의 엄마가 됐다. 그해 2월 태어난 사라는 사흘 만에 베이비박스로 왔고 친모는 ‘3년 뒤에 꼭 데리러 오겠다’는 편지를 남겼다. 가슴 저릿한 편지는 역설적이게도 아이에게 족쇄가 됐다. 입양을 원하는 가정이 나타나도 편지의 내용 탓에 거부되기 때문이다.

일시보호소를 거치면서 아이가 지쳐가는 모습을 본 김 권사는 위탁보호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쉽지 않은 길이었다. 가정위탁 절차를 진행한 뒤 아이가 다섯 살 되던 해에 법정 후견인을 신청했지만 한 차례 기각됐고, 보육원 시설장의 성씨(姓氏)를 딴 아이의 이름을 개명하는 것도 기각을 당한 끝에 어렵사리 승인됐다.

김영자 권사는 “위탁이나 입양 절차는 전쟁이라 표현할 정도로 오랜 시간이 걸리고 서류 절차도 복잡하다”면서도 “우리 모두가 책임을 느껴야 하는 일인 만큼 아이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용기를 낼 수 있는 가정이 많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이 버려지는 과정과 가정양육이 필요한 이유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고, 정부도 그에 초점을 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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