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는 상서로운 곤충이라고 알려졌다. 생물학자들에 의하면, 매미의 수명은 오래 살면 20년, 짧게 살면 7년 정도인데 대부분 삶을 땅속에서 굼벵이로 살아간다고 한다.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매미의 모습을 지상에서 볼 수 있는 기간은 딱 여름 한 철인 것이다. 여름 한 철 그렇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는 수컷이 종족을 보존하고자 암컷을 찾기 위한 행위이다. 이렇듯 고작 해야 한 달 정도 세상 속에서 사는 매미의 존재이지만, 생각해 보면 가벼운 미물이 아니다.
조선시대 임금과 관료들은 익선관(翼蟬冠)이라고 하는 관모를 쓰고 국정을 살폈다. 익선관의 한자를 풀어보면 날개 翼, 매미 蟬, 갓 冠인데, 매미 날개의 형상을 본 따서 만든 모자라는 뜻이다. 지갑 속에 들어 있는 만 원짜리 지폐를 보면 익선관을 찾아볼 수 있다. 지폐에는 세종대왕이 매미의 날개 모양을 한 모자를 쓰는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익선관이다. 이 관모는 매미의 5가지 덕(淸?儉?廉?文?信)을 본받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한국문화재단의 문화유산채널을 참고하면, 첫째, 매미는 이슬이나 나무진액을 먹고사니 맑을 淸이며, 둘째, 다른 곤충과 달리 집을 짓지 않으니 검소할 儉이며, 셋째, 농부가 애써 가꾼 곡식을 탐내지 않으니 청렴할 廉이요, 넷째, 매미의 입이 곧게 뻗어 선비의 갓끈과 같으니 글월 文이요, 다섯째, 여름 한 철 마음껏 노래하다가 가을이 되면 때에 맞춰 죽음으로 돌아가니 믿을 信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종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매미는 해탈이라는 자기 번뇌를 수행하는 곤충이다. 땅속에서 오랫동안 굼벵이로 살면서 7년 이상 인고의 세월을 보내다가 때가 되면 허물을 벗고 지상으로 나와 겨우 한 달 정도를 살면서 온 세상천지에 이익을 남겨주는 곤충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거실 한쪽에 걸려 있는 달력이 9월로 넘어간 지 일주일쯤 되었다. 계절을 잘 아는 매미들은 서서히 한여름 찬란했던 무대에서 퇴장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 뒤이어 귀뚜라미와 여치들이 화려한 가을축제의 무대를 이어받을 것이다.
매미들은 달력을 보지 않아도 이렇게 계절의 변화를 잘 감지하고 세상만사의 질서를 지켜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무리 미물이지만 매미도 귀뚜라미와 여치와 어울려 화려한 가을 축제를 즐기고 싶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나아갈 때와 물러갈 때를 잘 아는 매미야말로 사람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이렇듯 미물인 매미도 자신이 물러날 때를 알고 있는데, 하물며 사람들은 시계로 세월을 재고 달력으로 세상사를 주도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모른 채 서성거리고 있다.
세상 만물은 ‘시간’이라는 제한된 틀 안에서 존재한다. 미천한 풀벌레 소리, 물소리, 바람 소리, 새소리, 심지어 매미 소리조차도 세월을 알고 시를 알고 때를 알고 있는데, 만물의 영장류 속에 끼어 있는 나는 도대체 어떤 미련이 있기에 어정쩡하니 이 주변을 맴돌고 있는가?
이상용 가평군 전략사업TF팀장ㆍ경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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