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용의 더 클래식] 차이코프스키! 광활한 러시아의 아름다운 서정!

러시아의 정서를 바탕에 깔고 서구를 향해 뻗어나간 차이코프스키의 음악. 그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선율은 전 세계인의 가슴 깊숙이 파고들어 ‘감동’으로 자리 잡고 있다.

차이코프스키는 절망과 불행한 상황 속에서 이 곡의 작곡을 시작했다. 그의 얼룩진 삶에 끈질기게 실처럼 따라다녔던 것은 신경쇠약 증세였다. 성공보다는 실패에 더 민감했던 차이코프스키는 그가 음악의 구세주라고 생각했던 모차르트와 자기 자신을 비교하며 형식미와 구성력의 부족함을 특히 한탄했다. 자기 자신에 대해 항상 비판하고 회의했던 그는 자신이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 1번>에 대해서도 확신을 하지 못하던 중, 1874년 그의 스승이자 당시 러시아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손꼽히던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에게 이 작품을 보냈고 그의 의견을 기다렸다. 그러나 루빈스타인에게 비참하리만큼 혹독한 평만 되돌려받았다.

“도대체 이것을 음악이라고 만들었는가? 이 작품은 엉뚱하고 기괴하며 거북스럽기 그지없는, 한마디로 구제불능의 곡일세! 피아노로 연주하기에도 적절하지 못하고, 작품의 독창성도 전혀 찾을 수 없네!”

그로부터 4년 후인 1878년 차이코프스키는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레오폴트 아우어에게 악보를 주면서 초연을 부탁했다. 그러나 아우어는 그에게 쓰라린 좌절만 안겨줬다.

“차이코프스키가 내게 보여준 협주곡을 우정의 표시로 받아들였다. 나는 작곡가에 감사하다고 말했고, 우리 둘은 곧바로 연습을 해보았다. 첫 번째 연습에서 작품의 전체적 맥락을 파악하기는 어려웠지만, 1악장 2주제 선율의 서정적인 아름다움과 슬프게 변화하는 2악장 칸초네타의 매력이 느껴졌다. 나는 초연하겠다고 약속했고 차이콥스키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악보를 주었다. 그런데 악보를 자세히 보니까 이 협주곡이 가진 엄청난 가치에도 전체적으로는 손 봐야 했다. 작곡가는 바이올린이라는 악기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차이코프스키에게 돌아온 답변은, “이 작품은 연주할 수 없는 곡이오. 당신이 이 작품을 바이올린에 맞게 고치지 않고는 그대로 연주할 수는 없소.”

정승용 작곡가ㆍ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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