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스포츠와 정치

국가나 정부가 대중의 지지를 위해 스포츠를 이용하지만, 선수 개인도 망명하거나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규범적으로는 정치와 스포츠는 거리를 둬야 한다고 하지만 스포츠와 정치는 근대 민족국가의 국력 경쟁과 무관하지 않다. 국력이 경기 결과에 투영된다고 믿기에 어떤 경기는 전쟁 아닌 전쟁처럼 치른다. 외교적으로도 다른 나라 대중의 지지와 호응을 얻으려고 유명 체육인이나 대형 스포츠 행사를 활용하는 스포츠 외교도 주목받고 있다.

독재자가 운동경기와 승리의 결과를 정권의 정당화나 체제의 선전도구로 이용하는 것은 정치와 스포츠의 최악의 조합이다. 나치와 파시스트, 소련과 쿠바의 공산당과 중국의 마오, 남미의 군사정부와 같은 독재자는 물론 민주주의 체제의 자본주의 기업도 대중의 판단을 마비시키고, 지배를 정당화하여, 대중의 지지를 동원하는 데 스포츠를 이용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스포츠는 정치와 구분되는 스포츠맨십, 페어플레이, 우애와 같은 신성한 가치를 추구하는 별도의 영역이라고 하지만 비현실적이다. FIFA나 IOC와 같은 스포츠 기구가 부패나 분열과 같은 세속정치와 다른 원칙에 근거해야 한다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권력정치와 시장논리가 이들의 구성과 작동의 기본원리이다.

현실에서 정치와 스포츠의 연계는 방법과 정도의 문제이며 긍정적 구실을 하기도 한다. 국가와 별개로 세계적인 선수가 대중적 인지도를 활용하여 국제사회가 직면한 빈곤, 부채, 질병 퇴치, 인종차별과 같은 인류 보편의 가치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역량을 모으는 경우가 있다. 국가 차원에서 외교적 교착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대화의 단초로 스포츠를 활용하기도 한다. 1970년대 냉전을 데탕트로 이끈 미·중의 핑퐁외교와 2018년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로 한반도의 극단적 군사대결을 해소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정치와 스포츠의 결합은 진흙탕인 경우가 더 많다. 국내정치에서 국가수반을 포함한 정치인들은 가능하면 대형 스포츠 행사를 주관하거나 유명선수의 인기를 활용하여 대중과의 연대를 강조해 득표로 연결하려 한다. 국제관계에서는 스포츠 행사가 대결과 분쟁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69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는 월드컵 축구예선에 대한 불만으로 100시간 전쟁을 치르는 최악의 사태도 있었고 냉전기인 80년 모스크바와 84년 L.A. 올림픽을 미국과 소련이 연이어 보이콧하며 세계는 양분되었다.

일본은 국가차원에서 도쿄 올림픽을 통해 팬데믹과 원전사고의 위기를 극복하고 인류에 희망과 일본 국민에게 부흥의 계기를 알리는 정치와 스포츠의 선순환을 기대했지만,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올림픽을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의 방일 정상외교를 통한 역사문제와 수출규제 해소도 기획 단계부터 차질을 빚었고 경기 기간에는 우리 선수단의 응원 현수막과 급식소 운영으로 갈등을 겪었다.

이제 정치가 풀지 못하는 한일외교를 스포츠가 나서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구기 종목은 경쟁과 대결이라는 특성 때문에 결과에 따라 화합보다는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다. 대안으로 우리의 태권도와 일본의 유도가 멋진 기술을 선보이는 시범대회를 정부가 주관하여 한일 양국이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는 가운데 새로운 협력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올바른 화합의 길이다.

이성우 경기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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