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은 바쁘고 고단한 사회생활과 맡은 일에 대한 중압감, 한편으론 실존적 공허감을 겪으면서 공동체 안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간다. 때론 삶에 대한 의미를 찾지 못해 왜 사는지 모르는 채 타성에 젖어 살아가기도 한다.
소개할 두 권의 책이 그런 이들에게 생각의 전환과 새로운 시각을 통찰력 있게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로 유제프 차프스키가 쓴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어느 포로수용소에서의 프루스트 강의’다.
1940년 소련 그랴조베츠 포로수용소에 수용돼 있던 폴란드 장교들 몇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지적 생활을 하기로 논의를 한 후,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기로 한다.
폴란드 귀족 가문 출신으로 장교인 유제프 차프스키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강의했다.
영하 45도의 추운 날씨에 노역으로 완전히 녹초가 된 수감자들은 춥고 악취 나는 식당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당시 그들의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주제에 대해 강의를 열중해 들었다.
작가는 “이 기묘한 교외수업은 영영 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느끼던 그들에게 다시금 세상 사는 기쁨을 안겨주었다”고 회상한다. 또 프루스트에 대한 추억으로 벼텨낸 그 시간 만큼은 지금까지도 그의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이었다고 고백한다.
아이러니 아닌가? 가장 최악의 상황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만들었다는 것이. 거기에 그의 위대함이 있다.
그는 자유를 구속받는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길 수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했다.
여기 유제프 차프스키와 같은 상황에서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또 있다. 빈 의과대학의 신경정신과 교수였던 빅터 프랭클은 악명높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끌려가서 겪고 느끼고 분석한 내용을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으로 엮었다. 프랭클박사는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같은 참혹한 상황에서도 인간은 정신적 독립과 영적인 자유, 존엄성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최악의 환경이 수감자를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유도할 가능성은 있으나, 결국 수감자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그 개인의 내적인 선택의 결과이지, 수용소라는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장 혹독하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짐승으로 추락하지 않기 위해, 왜 살아가야 하는지 끊임없이 의미를 찾으며, 무너지지 않기 위해 지적이며 정신적 세계를 추구하다가, 끝끝내 살아난 작가들에게서 탁월함과 위대함 그리고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국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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