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제382조 제2항, 제415조)은 주식회사와 그 회사의 임원(이사ㆍ감사)의 관계는 민법의 ‘위임’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주식회사의 임원을 선임하는 것은 주주총회의 전속 권한이다(상법 제382조 제1항, 제409조 제1항). 즉 대표이사나 이사회가 특정인을 회사의 이사ㆍ감사로 선임할 수는 없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만일 회사가 A라는 사람을 이사로 선임하고자 한다면, 먼저 주주총회에서 A를 이사로 선임하고 이후 회사의 대표이사(B)가 회사를 대표해 A에게 이사 선임을 청약한 뒤 A가 이를 승낙하는 방식으로 이사 임용계약이 체결돼야 한다는 논리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논리를 따른다면 주주총회에서 이사로 선임됐음에도 불구하고 임용계약이 별도로 체결되지 않은 이상 A는 회사의 이사가 될 수 없다. 따라서 만일 대표이사 B가 어떤 이유로(경영권 갈등의 상대방이라는 이유 등) A에게 이사 임용계약의 청약을 아예 하지 않는다면 A는 이사가 될 수 없다. 결국 주주들이 주주총회를 거쳐 A를 이사로 선임한 결의는 전혀 무용하게 된다.
과거 우리 법원은 이러한 논리를 따라왔다. 즉 대법원(2009년 1월15일 선고 2008도9410 판결 등)은 주주총회의 선임 결의에 따라 대표이사가 임원 임용계약을 청약하고 상대방(임원으로 선임된 사람)이 이를 승낙함으로써 비로소 임원이 된다고 설명했다. 주주총회의 결의란 특정인을 회사의 임원으로 선임한다는 취지로 회사 내부에서 내린 결정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러한 판단의 근거로 제시됐다.
이러한 논리는 타당한가. 주식회사 제도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근간으로 한다. 주식회사를 소유하는 주주는 주주총회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영에 관여하고 이를 감독할 수 있는데, 이러한 경영 관여와 감독의 주요 수단 중 하나가 주주총회를 통해 경영진(임원)을 직접 선임하는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논리에 따르는 경우 주주총회를 통한 주주들의 경영 관여 및 감독의 권한은 실질적으로 침해당할 것이다.
대법원도 이러한 비판을 수용했다. 대법원(2017년 3월 23일 선고 2016다251215 전원합의체 판결)은 주주총회가 이사나 감사를 선임한 경우 ‘그 선임의 결의와 피선임자의 승낙만’ 있으면 그는 대표이사와 별도의 임용계약을 체결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이사나 감사의 지위를 취득한다고 봐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종전의 대법원 판례를 변경했다. 주주총회의 선임결의와 별도로 대표이사와 임용계약을 체결해야 이사ㆍ감사의 지위를 비로소 인정할 수 있다는 논리는 이사ㆍ감사의 선임을 주주총회의 전속적 권한(주주들의 단체적 의사결정 사항)으로 규정한 상법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점이 그 주요 근거이다.
김종훈 변호사 / 법무법인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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