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야당의 한 국회의원이 노조가 죽어야 한국경제가 산다고 일갈했다 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본인도 이런 의견에 동조하는 편임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 노조활동이 허용된 지도 35년 정도나 되는데 우리나라 대기업 노조들은 노사간 협상에서는 극단적인 파업이란 칼을 빼 휘두르기 때문에 사측은 100전 100패 한다.
본인은 1975년에 일본에 연수차 갔었는데 일본에서는 봄이면 으레 춘투(春投)라고 하는 노조의 연례적인 임금인상 투쟁이 벌어진다. 지하철이 파업해 연구소에 갈 수가 없는 상황이 벌어져 난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경험하지 못한 터라 두려움마져 들어 속으로는 뭐 이런 나라가 있느냐(?)고 푸념을 한 적이 있다.
그 후 10여년이 지난 후 우리나라에 노조가 허용되자 똑같은 현상을 수도 없이 목도했으며 초창기에는 이러다 나라가 망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갖기도 했다. 저성장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수많은 청년실업자가 거리를 방황하고 있는 지금의 우리 경제상황은 노조탓만 할 것은 아니지만 노조에게도 일말의 책임을 돌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난 1997년의 외환위기시에는 대량의 구조조정이라고 하는 엄청난 홍역을 겪었는데 대부분이 막강한 노조를 안고 있는 자본집약적인 대기업들이었다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대기업 노조들이 강성에 집착하지 않고 좀더 유연한 자세를 취해 진작에 상생의 길을 걸었더라면 그런 대란은 겪지 않았을 것 아닌가고 필자는 의심해본다.
필자는 1997년에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에 객원교수로 간적이 있다. 미국에는 차없이는 살 수 없어 도착하자마자 차를 구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리저리 알아보니 일제차는 좀 비싸기는 한데(2만2천달러) 인기가 있어 1년 타고 매도해도 1천500~2천달러 정도 손해보고 매각할 수가 있는데 반해 국산차는 좀 싸 1만6천500달러인데 1년 쓰고 중고차로 팔면 반값인 8천500달러 밖에 못받는다고 한다. 단연 일제차를 사는 것이 경제적인 이득임에도 본인은 알량한 애국심의 발로로 국내기업을 돕자는 취지에서 H사의 국산차를 구입, 귀국 시 가지고 돌아오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1997년 외환위기가 터져 이듬해 8월 귀국당시 환율이 1천300원으로 크게 올랐다. 차를 배편으로 탁송하려 하던 차에 국내 D자동차에 근무하는 처남으로부터 긴급 SOS 전화가 걸려왔다. 회사에서 차를 팔아오면 면직을 피할 수 있으니 우리가 쓰던 차를 팔고 돌아와 자기네 회사의 차를 구입해달라는 것이었다. 처남의 애걸을 무시할 수 없어 부랴부랴 H사의 차를 8천500달러에 팔고 국내에 돌아와 마음에도 내키지 않는 D사의 차를 구입해줌으로써 처남의 일자리를 유지시켜준 적이 있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는 국산차를 사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졌다. 왜냐고? 강성노조의 막무가내식 파업, 생산직 근로자들의 연봉이 1억원, 아무리 수요가 있다 하더라도 생산라인의 증설엔 절대 반대, 청년실업자수가 35만9천명이나 돼도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 수많은 부품업체들은 견디기 어렵다고 신음하고 있음에도 자기들만의 이익만을 챙기고자 하는 현실 등을 생각해보면 도저히 국산차를 사고 싶은 생각이 사라진다.
얼마전 아들이 식사를 하자고 해 주자장에 내려갔더니 B사의 외제차에서 며느리가 내리면서 타라고 해 “웬 외제차냐?”고 했더니, “외제차 산다고 하면 아버님한테 혼날 것 같아, 사고 나서 말씀드리기로 했다”고 하며 아들 내외가 잔뜩 긴장하는 표정이었다. 내가 외제차 타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차에 타고 화 낼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으니 애들은 안도하는 눈치였다. “얘들아 걱정하지 말아라, 나 국산차 사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노조가 변해야 경제가 살것이기에.”
정재철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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