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플러스] 사정변경으로 인한 계약의 해제·해지가 가능한지

계약은 일단 체결이 되면 원칙적으로 준수할 의무가 있다. 다만 계약을 해제ㆍ해지함으로써 계약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데, 계약이나 법률의 규정에 의해 해제ㆍ해지권이 인정된 경우가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상대방의 채무불이행이 있어야 계약을 해제하거나 해지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예외가 있는바, 그것이 바로 사정변경으로 인한 계약의 해제ㆍ해지의 경우이다.

사정변경의 원칙은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 원칙의 파생원칙이다. 신의성실 원칙은 법률관계의 당사자가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해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의를 저버리는 내용 또는 방법으로 권리를 행사하거나 의무를 이행해서는 안 된다는 추상적 규범으로서 법질서 전체를 관통하는 일반 원칙으로 작용하고 있다. 판례는 계약 성립의 기초가 된 사정이 현저히 변경되고 당사자가 계약의 성립 당시 이를 예견할 수 없었으며, 그로 인해 계약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당사자의 이해에 중대한 불균형을 초래하거나 계약을 체결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는 계약준수 원칙의 예외로서 사정변경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거나 해지할 수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이처럼 판례가 이와 같은 원론적으로는 사정변경으로 인한 계약의 해제ㆍ해지를 인정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법원에서 사정변경으로 인한 계약의 해제ㆍ해지를 인정한 예는 극히 드물다. 그 이유는 사정변경이라는 개념 자체가 불확정개념이라 할 수 있는데, 미세한 사정변경이 있는 경우에도 이를 이유로 한 계약의 해제ㆍ해지를 무작정 인정한다면 일반적으로 계약의 효력이 약화되고 거래안전에도 나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판례에 의하면 사정변경에 대한 예견가능성이 있었는지는 추상적ㆍ일반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안에서 계약의 유형과 내용, 당사자의 지위, 거래경험과 인식가능성, 사정변경의 위험이 크고 구체적인지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한다.

최근 대법원은 미국 취업이민 알선 계약이 체결되고, 이민 절차가 진행되던 중에 미국대사관의 재심사 결정이 내려져 이민 절차가 장기간 중단된 사안에서 이러한 사정은 사정변경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봐 계약의 해지를 인정했다. 위와 같이 사정변경으로 인한 계약의 해제ㆍ해지 인정사례가 극히 드물다는 점에서, 위 대법원 판결은 주목할 만한 판결이라 할 수 있다.

임한흠 변호사 / 법무법인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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