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은 나비를 ‘길벗’으로 삼았다. “나비야 청산 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가다가 저물거든 꽃에 들어 자고 가자/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잎에서나 자고 가자.” 고려가요 ‘청산별곡’의 맥을 잇는 ‘청산가’를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장자의 ‘나비의 꿈’도 빠트릴 수 없다. 꿈에 나비가 된 ‘장자’는 날개를 펄럭이며 꽃 사이를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문득 잠에서 깨어난 장자는 깊은 생각에 잠긴다. “내가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인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나로 변한 것인가?” 2천년 전 장자가 던진 이 오래된 질문은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다.
‘아주 옛날, 작은 호랑 애벌레 한 마리가 오랫동안 아늑한 보금자리가 되어 주었던 알을 깨고 나왔습니다.’ 트리나 폴러스가 지은 ‘꽃들에게 희망을’의 첫 구절이다. 1972년 처음 출간되어 5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애독되는 이 책의 주인공도 나비가 되는 애벌레이다.
■나비로 꿈을 꾸고 인생을 설계하다
건물 외벽에 예쁜 나비가 건물 벽 군데군데 붙어 있다. 2008년 4월에 문을 연 파주나비나라박물관(관장 박정태)은 광문각 출판사에서 설립한 박물관이다. 파주나비나라박물관은 나비를 주제로 박물관을 세울 생각을 한 사람은 누구일까? 설립자 박정태 관장은 과학 기술 분야의 도서출판 광문각·북스타 대표이사다. 박 관장은 출판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00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2006년 대한민국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으며 ‘안중근 리더십’과 ‘문재인 리더십’을 지은 저자이기도 하다. 나비나라박물관은 현재 문화예술경영학을 전공한 박지혜 실장을 중심으로 세 명의 학예연구사가 활동하고 있다. 2012년에 창의체험 프로그램 콘테스트 사업인 ‘교과서 속 살아있는 곤충의 한살이’로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2013년에는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생활사박물관 사업운영기관으로 선정되는 등 프로그램 기획력을 인정받고 있는 박물관이다.
지난 2년의 활동내역을 살펴보면 나비나라박물관이 중심에 두는 사업이 무엇이며 활동범위가 어디인지 짐작할 수 있다. 2019년에 지역예술문화 플랫폼 육성 사업 ‘우리 동네, 박물관 놀이터’, ‘나비, 일상을 수놓다’, ‘책장 속으로 날아든 나비’, 문화가 있는 날 ‘동화로 말하는 박물관-벅스 라이프’, 박물관 길 위의 인문학 ‘내 마음으로 읽는 나비이야기’, 움직이는 배움터 ‘민화로 만나는 옛 그림 속 나비’를 진행했다. 2020년에는 지역예술문화 플랫폼 육성 사업 ‘우리 동네, 박물관 놀이터’를 비롯해 어르신 문화프로그램 ‘훨훨 날아라, 나비의 꿈’, 박물관 길 위의 인문학 ‘다르니까 아름다운 우리’, ‘모두 몇 마리일까요?’를 기획 전시했다. 2021년 현재 지역문화예술플랫폼 육성 사업 ‘별다줄 서비스’와 박물관 길 위의 인문학 ‘꿈 크는 작은 날갯짓’ 그리고 문화가 있는 날 ‘멸종위기 나비를 찾아서’를 진행하고 있다.
“아이디어 회의를 자주 열어요. 새로운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지요. 변화를 시도합니다. 아이들에게 장래희망을 물었을 때 많은 아이들이 ‘유튜버’라고 하잖아요. 이런 중학생들에게 ‘꽃들에게 희망을’은 생각을 하도록 이끄는 책이에요. 자기를 성찰하는 수업도 많이 하고 있어요. 인문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합니다.” 박 실장의 말이다. “어릴 때 다양한 진로 체험을 해보면 아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낼 수 있잖아요. 우리 박물관은 이런 사업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요.” 1층부터 3층까지 연결된 박물관을 둘러본다.
1층의 북카페에는 나비와 관련된 어린이 동화책, 나비백과사전 등이 전시 판매되어 있다. ‘책상으로 날아든 나비’에 200여권의 곤충 도서가 책꽂이를 채우고 있다. 나비와 곤충에 관한 책을 골라 읽을 수 있는 이곳은 매달 학예사가 추천하는 새로운 도서를 만나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2층 표본전시관에는 국내외의 140여종 1천여점의 나비와 곤충 40여종이 전시되어 있다. 나비를 생각하면 동시에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나비박사’ 석주명(1908~1950)이다. 석 선생이 지은 우리 나비들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본다. “봄처녀나비, 도시처녀나비, 시골처녀나비, 가락지나비, 유리창나비, 검은테떠들썩팔랑나비, 꼬마흰점팔랑나비, 굴뚝나비, 작은멋쟁이나비, 모시나비, 산제비나비….” 한국의 나비가 모두 253종인데 이 중에서 석주명 선생이 지은 이름이 248종이다! 이름만 들어도 나비의 모습을 떠오르게 만든 선생의 우리말 사랑이 놀랍다.
■나비에 미친 사람들
전시실 한켠에 아름다운 나비가 가득한 4폭의 병풍이 있다. 나비에 미쳐 ‘남나비’란 별명을 얻은 조선의 화가 남계우(1811~1888)의 그림이다. 명재상으로 유명한 남구만의 5대손인 그는 예쁜 나비를 보고 갓 쓰고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10리를 쫓아가 잡아온 적도 있다는 일화를 남긴 인물이다. 나비박사 석주명 이전에 나비를 가장 사랑한 한국인은 분명 남계우일 것이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남계우도 나비가 깃털 모양의 더듬이로 냄새를 맡는다는 사실, 입속에 귀가 있는 나비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까? 나비나라박물관에는 또 한 사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인물을 소개하고 있다. “이분은 김용식 선생님인데, 전시된 나비 표본의 상당수를 기증한 분입니다.
생물교사 출신으로 한국나비학회장을 지낸 분이죠. 가끔 박물관에 들러 나비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시지요.” 나비 종류마다 암수 한 쌍씩 전시해 크기나 색 등 차이점을 쉽게 구분할 수 있고, 10종류의 나방도 함께 전시되어 나방과 나비를 어떻게 구별하는지도 배울 수 있다. 가장 아끼는 나비가 어떤 것인지 묻자 박 실장이 검은 빛깔의 나비를 가리킨다. “이 ‘산굴뚝나비’는 한라산에만 서식하는 나비인데 멸종위기 1급이라 절로 마음이 갑니다.” 등껍질이 반짝이는 곤충이 궁금하다. 살펴보니 일찍부터 장식으로 사용했던 비단벌레다. 나뭇가지처럼 보이는 대벌레, 얼핏 보면 나뭇잎과 구별하기 어려운 나뭇잎벌레를 보며 곤충들의 진화와 생존 기술에 감탄한다. 세상에서 가장 큰 나비는 무엇일까? “암컷의 날개 길이가 무려 28센티미터가 넘는다는 ‘알렉산드라비단제비나비’랍니다.”
“우리 박물관은 나비를 테마로 하고 있지만 생물을 보여 주기보다는 나비를 모티브로 한 인문학적 접근을 시도합니다. 예컨대 나비를 표본 할 때도 아이들에게 엄숙하게 진행하도록 지도하지요. 나비의 죽음을 알리면서 표본을 통한 재탄생의 의미를 느끼게 해 주려는 뜻입니다.” 아이들은 3층 체험실에서 날개 모양을 보고 나비를 맞춰보고, 멸종 위기종이 몇 종이나 있을까 문제를 풀어보기도 하며 건강한 생태계의 소중함을 배운다. “여기 전시된 15종 나비 중에서 9종이 멸종위기 종입니다. 환경부에서 지정한 것이 9종인데, 1급이 셋, 2종이 여섯이지요.”
■훨훨 날아라, 나비의 꿈
지난해에는 어르신 문화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제까지 저학년들이 교육의 주 대상이었는데 지난해에 코로나 때문에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전통 채색 기법을 활용한 온라인 민화 수업을 진행했지요. 예술전문 강사의 지도로 꽃과 나비가 주제인 화접도를 제작하는 프로그램인데 반응이 좋았어요. 앞으로도 어르신들이 창조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누리도록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어르신들을 응원할 계획입니다.” 주제가 ‘훨훨 날아라, 나비의 꿈’이다. 그렇다. 21세기는 평생교육의 시대다.
‘나비가 돌아왔다.’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곳이다. 나비가 날아드는 생생한 영상이 멋지다. “아이들이 적은 감상문에 적힌 ‘나비들아, 어서 돌아와!’ ‘우리가 나비를 살려야 해’ 이런 문구를 볼 때 뿌듯해요. 파주나비나라박물관은 아이들이 꿈을 발견하고 장년들이 후반생을 설계하는 배움터이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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