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문명사회를 이뤄 역사를 기록한 기간이 3천400년인데 전쟁 없이 지낸 시간은 268년에 불과하다. 인간은 전쟁을 집단적 문제해결의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해왔고 잔인함은 끝없이 진화해왔다. 전쟁은 적의 의지를 꺾어 굴복시키는 폭력행위의 정치적 결정이며 무력을 독점하는 국가가 적을 제압하고자 폭력을 정당화했기 때문에 항상 잔혹하고 비인도적인 특성이 국가 경영에 불가피한 덕목이 되기도 했다.
기원전 428년 고대 그리스에서 스파르타와 아테네는 각각 동맹을 결성해 세력 확장을 통한 패권을 다퉜다. 델로스 동맹을 주도하던 아테네는 전략적 가치를 이유로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맹주 스파르타의 일원이었던 멜로스에게 협력을 강요했다. 멜로스는 중립을 지키겠다는 약속과 정의를 내세워 동맹을 거부하자 아테네는 군대를 보내 멜로스를 정복하고 나서, 모든 성인 남자는 살해하고 여자와 어린이는 노예로 팔았다. 역사적으로 전쟁의 잔혹함에 대한 반성으로 전쟁에도 최소한의 정의가 지켜져야 한다는 논의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전쟁과 관련한 정의의 이론은 전쟁 자체의 정당성에 관한 ‘전쟁의 정의(jus ad bellum)’와 교전에서 정의로운 행위를 말하는 ‘전쟁에서 정의(jus in bello)’로 나뉜다. 전쟁을 시작하는 이유가 정당해야 하고 전쟁을 수행하는 수단도 정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멜로스에 대한 아테네의 침략은 잠재적 적국이나 중립국이 자신을 공격하기 전에 이를 예방하고자 수행하는 예방전쟁(preventive)으로 정당화할 수 있지만, 전쟁을 수행했던 방법은 부도덕하고 비인도적인 것이 분명하다.
정의로운 전쟁을 시작하는 명분으로 정당한 이유, 온당한 의도, 합당한 권위를 가진 주체의 공개적 선언, 마지막 수단, 성공 가능성을 든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인 6·25 전쟁은 아직 휴전상태이고 전쟁의 기원과 관련해 전쟁의 정의에 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북한은 미 제국주의자의 침략에 대항한 정당한 대의와 온당한 의도를 가지고 대항했다고 주장하며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항미원조전쟁을 강조하는 것은 같은 맥락이다.
전쟁의 정의론과 관련해 유엔군의 참전은 ‘소련의 지원을 받아 기습 남침한 북한에 맞서 정당하게 싸운 전쟁’이라는 우리의 입장에 중요한 논거가 된다. 국제사회는 북의 침략전쟁에 공동으로 대항해야 하는 도덕적 의무와 함께 성공의 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근거로 당시 유엔 회원국 21개국이 참전을 신청했고 16개국이 실제로 파병했다. 비회원국인 이탈리아를 포함한 일부 국가는 의료지원을 제공했고 유엔 전문기구는 식량제공과 민간구호활동을 펼쳤다. 중공군의 참전 이후에도 유엔은 1951년 8월 총회결의 500호를 통해 중국과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의결하는 등 대한민국에 대한 다각적인 지원을 지속했다. 유엔의 파병이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6·25 당시 국제사회가 공유한 전쟁의 정의에 대한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전쟁의 정의론도 이제 전쟁 종식의 정의(jus post bellum)를 논하는 단계로 진화했다. 전쟁의 이유가 온당했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전쟁을 합리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미래의 과제가 돼야 한다. 이제 체제대결을 넘어 우리가 한반도 평화를 주도해야 한다.
이성우 경기연구원 연구위원
댓글(0)
댓글운영규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