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든 이승을 떠나는 마지막길... 슬프지만 아름다운 전통상례
용인 예아리박물관(관장 임호영)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삼백로 785에 위치한다. ‘예아리’는 행정구역상의 마을 이름이 아니라 ‘예(禮)가 있는 아름다운 울타리’라는 의미이다. 박물관은 큰 길과 약간 떨어진 산 밑에 자리하고 있어 바깥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 있다. 산기슭을 돌아서면 매우 이국적인 모양의 적갈색 건물과 마주한다. 마치 어느 낯선 나라의 ‘마법의 성’ 같은 느낌이다.
2013년 4월 정식으로 개관한 박물관은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반드시 거치게 되는 통과의례를 전시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청소년이 되었을 때 머리에 관을 쓰고 성년 의식을 거행하는 관례(冠禮), 성년이 된 남녀가 결혼하는 혼례(婚禮), 인간이 죽었을 때 장례를 치르는 상례(喪禮), 돌아가신 조상을 기리는 제례(祭禮) 등 관혼상제(冠婚喪祭) 관련 유물들을 시민들에게 소개하고 다양한 체험과 교육 그리고 특별전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자 건립된 공간으로 세계 유일의 통과의례 전문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카페가 있는 건물 1층은 특별전시공간이고 2층은 도서관이다. 교육관은 아프리카 어느 왕궁을 본떠서 지었는데 예와 효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상설전시실은 고구려의 계단식 돌무지무덤인 장군총과 멕시코 마야 피라미드를 혼합한 퓨전식 건물이다. 교육관과 상설전시실 두 건물 모두 색깔도 적황색이어서 매우 이채롭다. 고인돌과 물레방아가 설치되어 있는 너른 정원은 또 하나의 야외 전시공간이다. 특별전시공간과 교육관 사이에는 장독대 항아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어 정겨운데 장독대 위에 아프리카 소년 동상이 서 있어 다소 낯설다. 마당을 가로질러 야트막한 산에 오르면 덤바위가 자리한다. 수정이 많아 일명 수정산이라고 부르는데 산 정상에 올라가 소원을 비는 기원의 장소이기도 하다.
특별전시공간에서는 경기도와 용인시가 후원하는 ‘2021년 지역문화예술 플랫폼 육성사업’의 일환으로 ‘예(禮)-를 잇다’ 프로그램이 한참 진행 중이다. 5월4일부터 9월30일까지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에는 누에의 삶을 관찰하면서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는 체험이 마련되어 있다. 누에고치에서 뽑은 실이 명주실이고 명주실로 짠 옷감이 비단이다. 옛날 할머니와 어머니들은 가정에서 베·모시·명주·무명으로 직물을 짜는 일, 즉 ‘길쌈’을 했다.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는 물레와 물레질하는 곱디고운 아낙네의 인형, 명주, 무명, 삼베 등의 옷감을 짜는 베틀과 베틀질하는 아낙네의 인형이 전시되어 있다. 물레 바로 옆에는 회색 빛깔의 누에들이 금새 한 잎 뚝딱할 것처럼 앙증맞게 꿈틀거리며 뽕잎을 갉아먹는다.
또한 이 프로그램은 누에의 일생을 통해 인생의 삶과 죽음도 깨닫게 한다. 누에는 아주 작은 알로 태어난다. 거의 한 점에 불과한 알이지만 알은 세계다. 애벌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의 죽음은 곧 애벌레의 탄생이다. 개미를 닮은 한 살배기 개미누에는 털이 북실북실하다. 한잠자고 일어난 두 살배기는 애기누에라 부른다. 석잠자기, 넉잠자기를 마치고 난 뒤 누에는 누에고치에서 번데기로 변신하며 인고의 시련을 거친 후 실을 토해내기 시작한다. 마침내 번데기는 누에나방이 되어 날개를 달고 하늘로 날아간다. 누에의 삶은 알에서 애벌레로, 애벌레에서 번데기로, 번데기에서 나방으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단계마다 전혀 다른 삶의 차원으로 완전 탈바꿈 하는 과정이다.
특별전시공간에서는 ‘예(禮)-를 잇다’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지역민과 함께하는 음악 공연을 개최할 예정이다. 예(禮)가 밝아진 다음에 악(樂)이 갖추어진다(홍재전서 제51권)고 했듯이, 공연은 5월29일 토요일을 시작으로 9월까지 5개월 동안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2시에 열린다.
상설전시실 1층 세계문화관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다양한 장례문화를 엿볼 수 있다. 아프리카 가나는 고인의 마지막 소원에 따라 관이 다르다. 고인이 하늘을 날고 싶다고 하면 비행기관을 준비하고, 동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면 동물 모양의 관을 마련하는 등 고인의 소원에 따라 다양한 관을 만들어 매장하는 풍습이 눈에 띈다. 가나의 장례문화는 장례식 때 관을 메고 춤을 추는 등 매우 특이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집트 투탕카멘의 왕의 목관과 악령을 쫓아내는 각양각색의 아프리카 가면도 볼거리 중의 하나이다.
조장(鳥葬)은 티베트의 장례문화인데 죽은 자를 데리고 하늘로 승천하는 신령한 새라는 의미의 ‘샤르거’, 즉 하늘의 장의사 독수리를 실감나게 재현해 놓았다. 한국의 작은 가마와 비슷한 일본의 좌식상여와 혼배(魂船) 등 일본의 장례풍습도 볼만하다. 사람이 죽으면 300일 동안 집에 모시며 ‘영혼은 하늘에 도착했다’는 의미의 ‘싸사까린’이라는 글귀를 새기고 고인의 명복을 비는 중국 백족의 특이한 장례문화도 만나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현재 미국, 일본, 스위스 등 7개국에서 사망자의 유골을 담은 캡슐을 로켓에 실어 우주로 보내는 ‘우주장(宇宙葬)’도 소개한다.
2층은 한국문화관으로 한국의 상고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상례문화를 시대와 주제별로 나누어 전시하는 공간이다. 전시실에는 이승에서 저승으로 갈 때 임시로 거처하는 집으로 생각했던 꽃상여를 비롯해 150여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그 상여에 장식된 인형들이 꼭두이다. 꼭두는 죽은 자를 저승까지 인도하는 동행자이자 호위무사, 광대 등 수많은 모습과 역할을 함축한다. 1998년 안동시 택지지구 개발과정에서 발굴된 400년 전 3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죽은 원이 아빠에게 ‘꿈에서라도 나타나 말해주라’는 원이 엄마의 애절한 편지는 눈물겹다. 부부의 사랑이 무엇인지 가슴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박물관은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가 송대 성리학자인 정호(程顥)·정이(程頤)·장재(張載)·주희(朱熹) 등의 예설을 모아 관혼상제와 잡례(雜禮)라는 하나의 통일된 체계로 분류하여 가정의례와 국가의 전례를 통합하는 예학체계의 가능성을 보여준 오선생예설(五先生禮說) 중 신주 만드는 법을 소개하고 신주(神主)와 함께 진열해 놓았다.
조선의 제22대 정조대왕이 승하했을 때의 장례 모습을 철저한 고증을 거쳐 재현한 국장행렬은 예아리박물관의 야심작이다. 정조국장도감의궤에 수록된 반차도(班次圖)에는 수원화성의 왕릉으로 가는 국장행렬이 총 40면의 채색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국장도감의궤는 국장에 관한 모든 의식과 절차를 기록해서 후일에 참고하도록 만든 책이다. 박물관에서는 국장도감 반차도에 의거해 국장행렬에 참가한 인물들과 말의 미니어처를 2년여에 걸쳐 진흙을 직접 손으로 빚어 가마에 구웠다. 등장인물은 국장도감을 총괄한 총호사(摠護使)를 필두로 문무백관 등 1천348명에 이르고, 말 341필, 가마 20채, 국장행렬의 길이 또한 100여m나 되다 보니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왕궁의 바깥문에서 왕릉까지 재궁(梓宮: 왕의 관)을 운반하는 큰 상여는 무려 190명이나 맸다. 국장행렬에 등장하는 인형들의 얼굴도 제각기 다른 표정들이고, 인형의 옷 또한 형형색색 다르다. 예로써 구성원 각자의 역할과 색깔을 규정했기 때문이다. 조선은 상복을 1년 입느냐 3년 입느냐 규정을 두고 목숨 걸고 예송(禮訟) 논쟁까지 벌였다.
정조대왕 국장행렬은 장엄하다. 조선왕조 예법의 장중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국장에는 곡을 하기 위해 궁녀들도 20명이나 동원되었다는 사실도 확인된다. 국장행렬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그때 그 자리에서 수많은 백성 중 한 사람이 되어 애도하며 함께 참여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현장감이 넘친다.
예아리박물관에 가면 누에는 실을 토하고 사람은 예를 잇는다. 수많은 유물들은 우리에게 삶을 돌아보고 죽음을 생각하라고 말을 한다. 관혼상제는 인류 보편의 몸짓이자 문화이다.
권행완(정치학박사, 건국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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