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공공기관 이전, 가난한 순서 말고 뭐 있나

선정 탈락한 지역 반발 있을 것, 합목적적•객관적 기준 있어야...‘낙후 지역 지원’이 합목적 핵심

-경제과학진흥원은 가평으로 간다. 주택도시공사는 포천으로 간다. 경기연구원은 의정부로 간다. 신용보증재단은 연천으로 간다. 농수산진흥원은 여주로 간다. 복지재단은 양평으로 간다. 여성가족재단은 남양주로 간다-. 이게 먼 소리냐 할 거다. 빠진 지역은 더 그럴 거다. 맞다. 이건 헛소리다. 그런데도 해두고 가야 할 이유가 있다. 이 헛소리를 해야 다음 설명이 가능하다. 공공기관 이전은 뭔지, 지역 선정의 기준은 뭔지….

북동부 시군들이 들떠 있다. 내걸린 경품이 큼직하다. 경기도 공공기관 7개다. 이재명 도지사가 걸었다. ‘경쟁해서 이기는 쪽에 주겠다’. 그러자 너도나도 뛰어들었다. 이걸 ‘경매’라고 봐야 하나. 아님 ‘입찰’이라고 봐야 하나. 어쨌든 기대에 찬 축제다. 왜 안 그렇겠나. 인력도 예산도 꽤 되는 기관들이다. 웬만한 중소기업 하나다. 살림 팍팍한 북동부다. 유치에 목맬 만하다. 그런데 딱히 기준이 없다. 뭘까.

이 지사가 말했다. “우리나라의 최고 문제는 국토 불균형 발전이다… 소외감과 억울함이 크다… 공정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중요한 과제다”(4월22일 공공기관 이전 난상 토론). 이 속에 힌트가 있다. 하긴 이거 말고도 힌트는 많다. 공공기관 이전은 벌써 20년 된 화두다. 노무현 대통령이 던지면서 시작됐다. 국가를 균형 있게 발전시키자는 얘기다. 부의 지역적 재분배다. 잘 사는 곳 부를 빼서 못 사는 곳으로 옮기는 작업이다.

여기서 ‘받을 동네’의 조건도 나온다. ‘못 사는 동네’다. 여럿일 땐 ‘제일 못 사는 동네’다. ‘못 사는’의 척도는 재정(財政)이다. 몇 개 개념이 있다. 총예산이 있는데, 정확지 않다. 예산 많아도 쓸 곳이 많으면 꽝이다. 자체 수입도 있는데, 이것도 정확지 않다. 많이 벌어도 인구가 많으면 꽝이다. 결국엔 재정 자립도다. 총 예산을 분모에 놓고 자체 수입의 크기를 계산한다. 그나마 널리 쓰이는 기준이다. 정부 정책도 이 표를 쓴다.

그 2020년 치를 펴자. 옆에 기관 신청 시군을 놓자. 그리곤 다음 세 조건을 맞추자. 첫 번째, 한 지역에 한 기관만 준다. 그래야 여러 시군에 공정(公正) 할 수 있다. 두 번째, 재정자립도 낮은 동네를 우선 주자. 소외ㆍ억울함 해소라는 이전 목적에 맞다. 세 번째, 선호(選好) 하는 기관부터 배정하자. 선호 기관은 경쟁률, 기관 규모로 정해진다. 이렇게 기준이 만들어졌다. -못 사는 동네부터, 좋은 기관부터, 하나씩.-

도내 31개 시군이다. 재정자립도 30위가 가평이다. 경제과학진흥원을 원해서 줬다. 29위가 양평이다. 복지재단을 원해서 줬다. 28위가 연천이다. 신용보증재단을 원해서 줬다. 27위가 포천이다. 주택도시공사를 원해서 줬다. 26위 여주에 농수산진흥원을, 25위 의정부에 경기연구원을, 22위 남양주에 여성가족재단을 각각 그렇게 줬다. 중간에 빠진 시군은 원하는 기관과 아귀가 맞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31위 동두천의 1차 탈락은 안쓰럽다.

출근은 세종에 하고, 업무는 서울서 본다. 십수 년 봐온 공공기관 이전 모습이다. 여기 무슨 합리성이 있나. 이 건도 마찬가지다. 도 본청과의 접근성? 이 기준대로면 최적지는 수원이다. 그런데 수원서 빼 간다는 거다. 그러니 기준이 달라진다. ‘도청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소외 지역’이다. 주변 인프라? 이 기준으로도 최적지는 수원이다. 이걸 수원서 빼 간다는 거다. 역시 기준이 달라진다. ‘아무 인프라도 없는 소외된 동네’다.

공정의 가치는 주관적 영역이다. 받으면 공정, 뺏기면 불공정이다. 시군 간의 경쟁이라서 더 그렇다. 지방자치가 만든 생존 생태계다. 북동부에는 반세기 만에 온 기회다. 이들에게 양보는 사치일 뿐이다. 이들이 매길 공정의 가치는 오로지 선정 여부다. 지금은 축제의 시간이다. 머지않아 좌절의 시간이 온다. 그때 모두에게 설명할 기준이 필요하다. 객관적이고 합목적적인데, 더 이상 변명조차 필요하지 않은 그런 기준 말이다.

‘제일 가난한 동네부터 순서대로 선정했다. 선정 기준은 이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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