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처분은 대단히 익숙한 단어다. 동물 전염병에 의례 등장한다. 2000년대 들어 발병이 특히 잦았다. 그만큼 살처분이란 표현도 귀에 뱄다. 돼지, 조류 등을 강제 폐사하는 것이다. 추가 감염을 막기 위한 조치다. 현대 방역 수준에서는 피할 수 없는 조치다. 하지만, 현장의 잔혹함이 말을 못한다. 업무를 담당한 공무원이 정신적 치료를 받기도 한다. 가장 기본이 되는 출발이 인식의 변화다. 그 일단의 모습을 본보가 보도한 바 있다.
안성시에서 이뤄진 살처분 현장을 취재했다. 목격자의 제보를 토대로 참혹한 현장을 전했다. 살아 있는 닭을 파쇄기에 넣었다는 전언이었다. 도가 현장에 대한 진상 파악에 나섰다. 그리고 실제 동물 학대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다. 도는 용역업체를 경찰에 형사 고발해 놓은 상태다. 여기서 도가 착안한 것이 용어 순화다. 살처분이라는 단어는 ‘죽여 없앰’을 의미한다. 사례에서와 같은 참혹한 방법을 합리화할 우려가 있다.
경기도가 동물복지위원회를 열었다. 경기도 축산국장, 동물단체 관계자, 대학교수 등을 초청했다. 살처분 등 현행 용어를 바꾸기 위해 자문을 구했다. 의제부터 위원회까지 일반 도민에는 낯설다. 그만큼 경기도의 시도가 특별하다. 여러 의미 있는 의견들이 수렴됐다고 한다. 이 의견을 농림축산식품부에 전달할 방침이다. 이어서 용어 순화를 위한 도민 의견 개진 기회도 만들기도 했다. 도민이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일단 검토된 명칭들을 보자. 살처분은 안락사로 대안이 나왔다. 도축장은 ‘생축작업장’ 또는 ‘식육처리센터’로 바꾸자는 의견이다. 도축검사팀도 ‘대동물검사팀’, 도계검사팀은 ‘소동물검사팀’ 등으로 바꾸자는 의견이다. 아울러 동물보호법에 표현돼 있는 단어의 변경 의견도 나왔다. 이를테면 분양은 ‘입양’으로, 소유자는 ‘보호자’로, 도살은 ‘죽임’으로, 사육은 ‘양육’으로 바꾸는 것이다. 언어 자체가 주는 존귀함이 상당하다.
시작은 동물전염병 처분과 관련된 용어 개선 필요성이었다. 이게 도의 적극적인 행동으로 통상 용어, 법률 용어 변경으로까지 기획하게 됐다. 바람직한 일이다. 좀 더 많은 도민이 참여하는 과정을 거쳤으면 한다. 어찌 보면 이런 용어 변경의 노력 과정 자체가 본 목적에 부여하는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이은경 도 동물보호과장도 “필요할 경우 하반기 이전에도 추가로 동물복지위원회를 개최해 의견을 나눌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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