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다가오기 전에 그를 만나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담소를 나누었다. 익히 아는 사실이었지만 이것만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주한 스위스 대사는 적어도 한 가지 점에서는 자부(自負)가 분명하였다. 스위스가 유럽에서 청년 실업률이 가장 낮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 스위스인의 긍지가 배어 있었다.
유럽에서 최저면 세계에서 가장 낮은 것이다. 한국은 혁신지수가 세계 1위라고 말해 주면서 나름의 자부를 삼았지만, 청년 실업률에 대한 지표는 실로 중요한 것이고 근본적인 처방 없이는 개선이 요원한 이슈다. 4년이나 한국에 근무한 스위스 대사는 한국 사정에도 정통했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대학입시와 입사시험의 심대한 비효율에 직면하고 있고, 사회적 낭비요인이 크다는 점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
스위스인들은 10대 초반에 자신의 인생을 설정한다고 하였다. 바젤 출신의 주한 대사가 강조한 스위스식 도제학교(Apprentice System)가 핵심이었다. 대다수 국민은 10대 후반에 벌써 직업인이 돼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정답은 스스로에게 있었다. 종종 보도되듯이 대학 진학률도 유럽에서 가장 낮았다. 그 대신 가장 빨리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국제경쟁력도 최상인 스위스의 비밀은 10대 청춘들의 실용적인 생각과 인생 초반에 체득하는 인생철학에 있었다. 조기에 독립적인 사고를 하면서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한다. 건실한 시민들이 모여 건강한 사회를 이루고, 사회적 고민이 가장 적은 나라 스위스를 만들어 왔다.
인생에서 가장 큰 죄는 시간 낭비죄일 것이다. 장 칼뱅의 프로테스탄티즘이 아니더라도, 밀도 있게 시간을 보내면서 열심히 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스위스의 젊은이들은 이 점에서 모범이다. 사회가 그렇게 구조화돼 있고, 개인도 철저히 부응한다. 알프스의 만년설 너머에 자리잡힌 스위스인들의 건실한 자세를 진지하게 실행해 볼 때가 됐다.
그들은 중학교 시기를 중시하고, 이때 인생설계를 마친다. 그래서 길고도 길 수 있는 고민과 방황의 늪에 빠질 가능성을 줄인다. 국가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바라기 전에 우리 자신부터 단호하게 자신을 찾아야 한다. 그것만이 이 시대 최대의 난제인 청년실업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일 것이다.
직업학교를 가건, 정규학교를 가건, 독자적인 길을 가건, 10대 초반에 승부를 걸어야 20대에 직업인으로 걸어갈 수 있다. 매력적인 자신만의 스토리도 만들 수 있다. 주변의 시선과 부모의 기대에만 자신을 맡기면 끌려가는 삶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 최고의 퍼스트레이디였던 엘리너 루스벨트의 저서명 <스스로의 힘으로>가 떠오른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최고의 사랑이라고 노래한 휘트니 휴스턴의 목소리도 다가온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노래한 우리나라 어느 여가수의 음성도 들린다.
최승현 경기도 국제관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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