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8. 수원박물관

‘2019년 공립박물관 평가인증 우수기관’ 선정, ‘전시 개최·교육 프로그램 실시 실적’ 전국 1위
역사관, 선사~60년대 수원의 모습 한눈에 파악... 서예관, 전국 지자체 중 최초 서예전문박물관

윤원규기자
수원역사박물관은 수원의 과거·현재·미래의 시점과 주제별로 ‘선사·역사시대의 변천사’, ‘수원로의 개설’, ‘60년대 수원만나기’, ‘근대 수원의 문화’로 과거의 역사와 문화뿐만 아니라 현대의 발전하는 역동적인 수원의 변화를 만날 수 있다. 윤원규기자

선정비로 즐비한 언덕을 오르다가 1892년에 세워진 김홍집(1842~1896)의 선정비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1889년부터 1890년까지 수원유수로 재임했던 김홍집은 이후 개혁의 중심에 선다. 관찰사를 역임하고 수원유수로 재직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전주류씨 효자정문은 1812년에 제작된 것으로 수원에 단 하나 밖에 없는 것이다. 바로 곁에 애국지사 필동 임면수 선생의 묘비석이 서 있다. 수원출신인 선생은 인재 육성을 위해 전 재산을 털어 삼일학교를 설립하고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에서 독립군을 양성한 지사였다. 고인돌과 장독대가 조성되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기는 수원박물관은 전망도 좋고 야외전시물이 풍부하다.

■ 수원박물관, 인문학의 숲을 가꾸다

수원박물관을 둘러보면서 푸른 잎이 무성하고 줄기가 우람한 버드나무를 떠올렸다. 수원시는 “인문학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동마다 도서관이 있고, 박물관도 셋이나 된다. 고인돌부터 문이 달린 삼성 TV를 볼 수 있는 수원박물관, 정조의 개혁정신을 알려주는 화성박물관, 신도시에 세워진 광교박물관을 통해 수원이 역사와 문화적 자산이 풍부한 도시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한다. 120만의 시민들에게 인문학의 맛을 즐기게 하려는 정책이 뿌리를 내렸다는 증거일 것이다. 도서관을 인문학의 가지와 잎에 비유한다면 나무의 줄기와 뿌리에 해당하는 기관이 박물관이다. 수원박물관은 2008년 개관했을 때부터 시민밀착형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관람객과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수원역사박물관과 한국서예박물관으로 구성된 수원박물관은 2008년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에서 개관, 수원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수원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고 있다. 윤원규기자
수원역사박물관과 한국서예박물관으로 구성된 수원박물관은 2008년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에서 개관, 수원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수원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고 있다. 윤원규기자

“지금 전시하고 있는 ‘서풍만리(書風萬里)’는 우리 박물관의 자랑이에요. 순순하게 우리 박물관이 소장한 유물만으로 조선 500년 서예의 흐름을 보여주는 기획전을 연 것입니다. 우리 박물관의 저력이 이 전시회로 증명이 된 것이지요.”

“지난해 코로나19로 힘들었을 때 우리 박물관이 야심 차게 기획한 ‘집콕박물관’이 히트를 쳤습니다. 박물관 홈페이지와 수원시 홈페이지를 구독한 횟수가 1만회 이상입니다.”

“하하, 또 있습니다. 수원박물관이 2017~2018년 발굴하여 2019년 신청한 독립유공자 아홉 분이 2020년 광복 75주년을 맞아 정부 포상을 받았습니다. 모두 국내에서 항일운동을 펼친 분들입니다. 우리 박물관은 항일운동을 펼쳤으나 잊힌 유공자들을 발굴하는 사업을 꾸준히 벌이고 있습니다.”

이민식 학예팀장과 이동근 학예연구사를 통해 수원박물관이 거둔 성과와 근황을 들으면서 수원 천변을 묵묵히 지키는 버드나무를 떠올렸다. 수원박물관은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큰 상을 받았다. ‘2019년 공립박물관 평가인증 우수기관’으로 선정된 것이다. 특히 ‘전시 개최·교육 프로그램 실시 실적’은 전국 227개 공립박물관 중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인증평가가 처음 실시된 2017년도에 전시 기획력과 유물 관리 부분 등에서 수원박물관, 수원화성박물관, 수원광교박물관은 높은 평가를 받아 2회 연속 우수기관으로 선정되는 기쁨도 누렸다.

1960년대 다양한 수원의 모습을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1967년 수원 방화수류정과 동장대 일원에 움막과 초가집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는 사진. 윤원규기자
1960년대 다양한 수원의 모습을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1967년 수원 방화수류정과 동장대 일원에 움막과 초가집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는 사진. 윤원규기자

수원박물관은 ‘수원역사관’과 ‘한국서예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원의 역사와 문화를 ‘수원의 자연환경’, ‘선사·역사시대의 변천사’, ‘수원로의 개설’, ‘60년대 수원만나기’, ‘근대 수원의 문화’로 구분하여 역동적인 도시 수원의 모습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한국서예관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최초로 건립한 서예전문박물관이다. 2003년에 저명한 서예가 근당 양택동 선생으로부터 기증받은 유물을 계기로 건립되었다.

수원의 변화상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근현대의 역사가 재미있다. <수원시 승격 6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기획전-어제가 꿈꾸는 내일>, <나는 나혜석이다>, <사운 이종학 특별기획전-끝나지 않은 역사전쟁>, <옛 수원 사진전(1900~1960)-렌즈 속, 엇갈린 시선들>, <옛 수원 사진전(1970~1980년대) 약진수원>, <갑신정변 130주년 기념-새로운 세상을 꿈꾼 젊은 그들>, <수원, 수원사람들의 독립운동>, <다양한 삶의 교차점, 수원역>, <3.1운동 100주년 기념 테마전-수원 여성의 독립운동>, <수원시 승격 7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사람중심 더 큰 수원> 역시 수원의 근현대사를 주제로 한 것이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듯이 수원의 근현대를 집중해서 다루고 있다. 1980년까지 30만에 불과했던 인구는 불과 40년 만에 120만 거대도시로 성장한다. 기획전에서 열린 도시 수원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정립하기 위한 고민을 느낄 수 있다.

■ 전통·첨단이 공존하는 세계 속의 문화도시인 수원시

수원지역에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다. 박물관 앞에서 선사시대의 고인돌을 만날 수 있다. 수원은 고려시대부터 ‘효원의 도시’로 인식된다. ‘오륜행실도’에는 아버지를 물고 간 호랑이를 찾아내 죽이고 부친의 시신을 장사지낸 효자 최루백의 일화가 실려 있다. <고려사열전>에 이름이 실린 최루백은 애처가이기도 했다. “믿음으로 맹세하노니, 그대를 감히 잊지는 못하리라. 무덤에 함께 묻히지 못하는 일 애통하고 또 애통하도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염경애를 그리며 지은 묘지명의 한 부분이다.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효성으로 화성을 건설한 정조와 최루백은 수원을 효원의 도시로 알려낸 주인공이다. 기와 한 조각에서 역사의 흥망성쇠를 읽어내는 것이 역사의 묘미다. 창성사지에서 발굴된 수키와 한 점이 그것이다. 보물 제14호인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보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9호인 ‘팔달문동종’에 더 마음이 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1080년에 제작된 이 고려시대의 동종은 처음에는 만의사에서 불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다가 화성이 건설되면서 절을 나와 종로에 설치되어 소리로 하루의 시작과 마감을 알려주다가 소임을 다하고 팔달문에서 보관하다가 2008년에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1960년대 남문시장을 모형으로 제작, 60년대 당시 남문의 중앙극장, 예쁘다 양장점, 천덕상회, 화춘옥 등 실제 상점이 재현돼 있다. 윤원규기자
1960년대 남문시장을 모형으로 제작, 60년대 당시 남문의 중앙극장, 예쁘다 양장점, 천덕상회, 화춘옥 등 실제 상점이 재현돼 있다. 윤원규기자

수원의 토박이 성씨로 탐진최씨, 여주이씨, 남원윤씨, 온양정씨, 상주박씨 등의 여러 종중에서 기증한 유물도 전시되고 있다. 관속에 넣었던 청동수저와 조선통보, 명기라 불리는 작은 그릇들이 눈길을 끈다. 가족들의 애틋한 마음이 느껴져서일 것이다. 보물로 지정된 박유명 초상화도 눈여겨볼 유물이다. 범을 수놓은 흉배를 보니 무관 당하관에 불과하지만 표정이 당당하고 눈매가 범상치 않다.

수원은 농업도시였다. 200년 전 수원에서 국영농장인 둔전을 경영했다. 선진농업의 전통은 현대로 이어져 서둔동에 권업모범장과 농업학교가 설치되고, 해방 후에는 농촌진흥청과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이 들어선다. 박물관은 식량난을 해결한 ‘통일벼’가 수원에서 개발되었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알려준다.

1960년대 수원 시가를 재현한 공간에 들어서면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아이들이 신기해하고 중년 관람객은 추억에 잠긴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가 상영되는 중앙극장을 비롯해 재봉틀과 정장이 걸려 있는 예쁘다 양장점, ‘인간 저울’로 불리던 천덕구가 쌀가마니를 옮기고 있는 미곡상이 등장한다. 다방에서는 대한뉴스에 소개된 수원 풍경과 수원과 관련 있는 노래를 들려준다. 중앙에 설치된 공중전화의 힘을 빌리면 더 깊숙이 들어갈 수 있다. 상점들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를 듣고, 잠시 사진관에 들러 그때 그 시절의 옷을 입고 옛 수원 화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도 좋다. 손님을 부르고 가격을 흥정하는 상인의 목소리가 활달하다. 닭 우는소리로 시작되는 장터의 하루를 새벽부터 낮, 밤의 느낌까지 연출하여 그 시절로 빠져들게 한다.

수원박물관은 오래전부터 독립운동가 발굴과 선양에 정성을 쏟았다. 수원기생들의 만세운동을 주도한 김향화(2009년 대통령표창)와 열아홉의 나이에 비밀결사운동을 주도하다가 순국한 이선경(2010년 애국장), 이선경과 함께 구국민단에서 비밀결사운동을 벌인 최문순(2018년 대통령표창) 같은 독립운동가들의 행적을 발굴하여 표창을 이끌어낸 일은 칭찬을 받아 마땅하다. 오는 30일에 개관하는 <수원 산누리의 독립영웅들>도 이 사업의 연속선상에 있다. 신록이 눈부신 계절이다. 수원박물관 마당에서 봄의 기운을 한껏 들이킨다.

야외 전시장에는 수원 곳곳에서 모인 다양한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윤원규기자
야외 전시장에는 수원 곳곳에서 모인 다양한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윤원규기자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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