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하던 날
이수경
짐 나르는 아저씨가
화분을 달싹
드는데
왕거미 한 마리
툭 떨어지더니
부리나케 달려서
다른 화분 아래로
쏙 들어갔다.
말하지 말아야지
엄마한테는
하찮은 생명 하나라도 가벼이 보지 않는 마음
이사하는 날의 풍경을 담은 동시다. 짐 나르는 아저씨들의 분주한 손으로 집안의 물건들이 하나둘씩 이삿짐 차에 옮겨 싣는다. 가족들은 그저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예전처럼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손을 쓸 필요가 없는 게 요즘의 이사 풍경이다. 이 동시 속의 아이도 그렇게 지켜보는 중이다. 그러다가 화분 밑에 숨어 있던 왕거미를 본 모양이다. 자신의 은신처가 드러나자 화들짝 놀란 왕거미가 부랴부랴 다른 화분 밑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걸 본다. 중요한 건 아이의 마음이다. ‘말하지 말아야지/엄마한테는’. 엄마가 알면 당장 왕거미를 잡아 죽일 건 빤하니 비밀로 하고 싶은 거다. 그래서 못 본 척하겠다는 거다. 이 아이의 마음을 시인은 놓치지 않았다. 이런 게 동심이다. 하찮은 생명 하나라도 가벼이 보지 않는 마음. 어린이 마음은 하늘의 마음, 아름다움 그 자체다. 아이는 그날 저녁 일기장에 이렇게 적을 것이다. “왕거미야, 아까 낮에 많이 놀랐지? 미안해. 제발 꼭꼭 숨어서 들키지 말고 오래오래 잘 살아라. 알겠지?”. 아이의 일기장은 아이와 함께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아름다운 비밀 하나를 고이 간직한 채로.
윤수천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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