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7.과천 ‘아해박물관’

아이들 스마트폰 삼매경, 웃고 뛰노는 모습 그립다

윤원규기자
팽이, 연날리기, 공기놀이 등 아이들이 다양한 전통놀이를 만날 수 있는 메인전시장의 모습. 윤원규기자

아이들은 추운 겨울에도 집안에 갇혀 있지 않았다. 동무들과 어울려 제기를 차고, 팽이를 돌리고 언덕에 올라 연을 날렸다. 햇볕 좋은 봄날이면 마당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공기놀이를 하고, 골목에서 벽돌치기를 하고 사방치기를 하며 뛰어노느라 해가 저무는 줄 몰랐다. 요즘의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학원으로 실려 가고, 쉬는 시간이면 스마트폰을 꺼내 든다. 놀이가 사라지고 골목을 가득 채우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사라졌다. 코로나19로 ‘뛰노는 아이’를 만나기란 더욱 어려워졌다. 아이들의 웃음을 되찾을 수는 없을까.

 

윤원규기자
콩쥐 이야기를 통해 전통 생활도구를 만날 수 있는 수장고형 전시관 ‘콩쥐네 집’ 윤원규기자

■ 아이들은 놀면서 자란다

놀이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곳이 있다. 과천시 주암동에 위치한 ‘아해박물관’(아해한국전통문화어린이박물관, 관장 문미옥)이 그곳이다. 아해박물관은 PC나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 아이들이 무얼 하며 어떻게 놀았는지 알려주고 옛날처럼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다. 서울여대 아동학과 교수인 문 관장이 사재를 털어 세운 이 박물관은 조상들의 슬기를 엿보고 체험할 수 있는 전통 놀잇감 유물들로 가득하다. 피아제를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은 문 교수가 선진교육 이론을 배우기 위해 국제행사에 참여하면서 한국의 전통놀이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때 깨달은 것은 외국이론을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종주국의 학자들을 넘어설 수 없다는 사실과 전통놀이가 아동교육에 소중한 자산이라는 사실이다.

외국의 유명 아동학자들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들에게 자랑하고 내세울 만한 장난감을 보여주지 못해 자존심이 상했던 그는 이때부터 전통 놀잇감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88올림픽이 열리던 그해부터 수집하기 시작한 전통 놀잇감은 연구실을 채우고 집안에도 쌓여갔다. 아이들에게 놀이의 즐거움과 낭만을 돌려주고 싶었던 문 교수는 부친이 물려주신 땅에 박물관을 세우겠다는 결정을 내린다. “제대로 된 놀이는 창의성과 과학성, 예술성을 기르는 높은 수준의 공부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박물관은 전시관(997㎡)과 어린이 체험장으로 사용하는 임야(1만2천여㎡)로 구성돼 있다. 아이의 옛말인 ‘아해’는 세종대왕이 1449년에 한글로 펴낸 ‘석보상절’에 처음 기록되었다고 하니 이 말은 훨씬 오래전부터 쓰였을 것이다. 박물관 건물에도 어린이에 대한 사랑과 사람과 자연의 합일과 소통을 강조하는 한국의 전통사상이 반영되어 있다. 한국적 조형미를 살린 박물관의 너른 창문을 통해 불어오는 바람에 싱그러운 숲의 기운이 실려 있다.

 

윤원규기자
고무놀이, 줄다리기, 줄타기 등 다양한 체험활동이 마련된 야외전시장 모습. 윤원규기자

■ 놀잇감에서 발견하는 옛사람들의 지혜

1층 상설전시관에는 우리나라 전통놀이감과 어린이 공부를 위해 사용되었던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태교 관련 서적과 태항아리 같은 유물을 비롯하여 다양한 옛날의 놀잇감을 계절, 연령, 소재별로 전시하고 있다. 놀잇감도 방안놀이, 마당놀이, 하늘놀이, 흙놀이, 물놀이, 불놀이, 들판놀이, 지혜놀이, 셈놀이, 서당놀이로 구분하여 전시하고 있다. 전시실 중앙에 있는 작은 서당은 선비들이 익혔던 육예(六禮)를 거문고와 활, 등자, 책 같은 소품을 순서대로 놓아 입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예절(禮), 음악(樂), 활쏘기(射), 수레몰기(御), 책읽기(書), 셈하기(數)를 말하는 육예를 통해 전인교육을 추구했던 옛사람들의 교육정신을 엿볼 수 있다.

숫자가 적혀진 삼각형 팽이는 어디에 쓰이는 물건일까. 팽이를 돌려나온 수와 규칙에 따라 관직에 입문해 영의정에 먼저 도달하는 겨루기는 승경도, 금강산이나 박연폭포 등 조선 팔도의 명승지 돌아보면 놀았던 승람도가 있다. 승경도와 승람도에는 놀이를 통해 아이들이 장래를 꿈꾸고, 팔도지리를 익혔던 옛사람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아이의 허리통만한 장기알도 있고, 이순신 장군이 멀리 떨어져 있는 전선의 우리 군사들만 알아보도록 문양으로 명령을 전달했던 연이 있고, 연을 날릴 때 사용했던 여러 가지의 얼레도 있다. 전시실 맨 끝에는 근대 놀이와 관련된 유물들이다. 소파 방정환 선생이 1937년에 펴낸 잡지 ‘어린이’가 있다. 표지가 헤진 낡은 이 잡지를 보면서 “어린이를 한울님 같이 생각하라”고 가르친 해월 최시형 선생의 고귀한 가르침을 떠올린 것은 아이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사상이 서양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상이라는 사실이다. 출구 앞에 율곡 이이(1536~1584) 선생이 아이들을 위해 지은 ‘격몽요결’이 적혀 있다. “볼 때는 반드시 바르고 밝게 보며, 들을 때는 반드시 귀를 열어 정확하게 듣고, 용모는 반드시 공손하게 하며, 의심나는 것은 반드시 물어볼 것을 생각해 보자.”

2층과 3층에는 아늑한 교육실과 널찍한 체험실이 있다. 숲에 가면 이보다 더 큰 전시관이 또 있다. 오픈수장고형 전시관인 ‘한라백두 놀이마당’과 ‘콩쥐네 집’에는 옛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희귀한 유물들이 가득하다.

매년 특별전시도 열고 있다. ‘꼰, 꼬니, 고누-삶을 놀이하다’(2016) ‘공룡시대 도토리 팽이에서 자이로 팽이까지’(2017) ‘그림 속 우리 놀이 미래를 열다’(2018) ‘옛날 옛적 우리놀이, 미래를 여는 녹색놀이’(2019) ‘나무·흙·돌·풀로 하는 우리 놀이와 생활展’(2020)이다. 4월부터 11월까지 2021년 길 위의 인문학 사업으로 ‘전통놀이 속 인문학 산책’을 진행하는데 다섯 가지의 소주제부터 살펴보자. ‘팽이, 도토리에서 자이로까지!’, ‘제기, 손으로 발로!’ ‘공기, 던지고 잡고!’, ‘아해승람도, 조선을 담다!’, ‘아해승경도, 미래를 열다!’

 

윤원규기자
과천시 주암동에 위치한 아해박물관은 우리 전통놀이를 오감으로 체험하는 과정을 통해 어린이들의 창의성과 과학성, 예술성 향상에 기여하고자 설립됐다. 윤원규기자

■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아해숲을 살리자

박물관이 머리라면 ‘아해숲’은 몸통과 손발인 셈이다. 이곳에서 고구마 감자 구워먹기, 칡공 만들기 같은 놀이를 벌인다. 참나무와 소나무 아래로 진달래와 철쭉이 꽃을 피운다. 가끔 꿩이 날아오르는 숲에는 방울꽃과 제비꽃도 꽃을 피우고, 하늘소와 풍뎅이가 어울려 살고 있다. 숲에 난 길 이름도 예쁘다. 소나무길, 밤나무길, 상수리길, 왕벚나무 꼬부랑길, 살금슬금 길이다. 아이들이 이 길을 따라 나무와 풀꽃들을 살피며 산책을 한다. 황토길, 낙엽길, 나무다리길, 굽은 길도 있다. 계절에 따라 놀이를 하고 풀과 곤충을 관찰하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깨치는 길이다. 계단마당, 언덕마당, 다람쥐마당, 하늘길 마당까지 4개의 놀이마당에서 투호놀이, 칡 공 만들기, 팽이치기처럼 전시장에서 보았던 전통놀이를 체험하기도 한다. 숲 곳곳에는 놀잇감 유물을 배치하여 어린이들이 그 놀이를 체험할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이런 정성을 쏟은 덕분에 2012년에는 창의체험 프로그램 전국 최우수상을 수상한다.

매년 6만여명이 찾는 아해숲이 사라질 위기에 있다. 박물관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2016년 박물관과 숲 체험장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주암동 일대 92만9천여㎡에 공공주택 5천249세대를 건립하는 뉴스데이 개발사업에 박물관 부지를 강제 수용하겠다고 통보했다는 것이다. 문 관장과 박물관 관계자들은 이 결정을 철회하도록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그러나 LH의 입장은 한결같았다. 보상비를 받아 다른 장소에 박물관을 세우라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전통 놀이문화를 체험토록 하여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정체성을 기르는 교육보다 더 큰 공익사업이 또 있을까. 정부가 세금으로 조성해야 할 체험숲을 지원은 못할망정 오히려 없애려 한다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LH가 박물관 임야에 근린공원을 조성할 계획을 밝혔다는 사실이다.

일은 순리대로 풀어야 한다. 공공사업을 수행한다면서 공공정신에 반하는 관료들의 행정편의주의와 강압적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정부 당국은 전통놀이를 통해 우리 아이들의 건강한 웃음과 꿈을 찾아주는 문 관장의 호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전통놀이를 통해 공익사업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는데, 막무가내로 숲을 갈아엎고 주택 단지를 짓겠다고 강변하니 기가 막힙니다. 숲체험장과 박물관은 유기적으로 기능 하는데 숲을 없애버리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반드시 숲을 살려야 합니다.”

김준영(다사리행복학교 행복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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