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조선구마사’ 폐지, 중국풍과 동북공정

사극 판타지에 엑소시즘(귀신 물리치기)을 더한 드라마 ‘조선구마사’는 분명 ‘될성싶은’ 작품이었다. 조선 태종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드라마는 악령이 깃든 좀비 형태의 ‘생시’로부터 백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간의 혈투를 그리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첫 회가 방영된 직후 문제가 터졌다. 유교를 숭상하며 미신타파에 앞장섰던 태종을 악령에 홀려 무고한 백성을 학살하는 무뢰한으로 묘사해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인 것은 물론, 훗날 세종이 되는 충녕대군이 바티칸 사제를 접대하기 위해 찾아간 기생집의 인테리어와 음식, 출연진의 복장까지 과도한 중국색을 입히면서 마치 중국드라마를 본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 것이다.

엄연히 실존하는 역사적 인물들을 왜곡하고, 중국풍을 대거 차용한 대가는 시청자들의 이유 있는 분노였다. 그리고 광고주와 방송사 역시 급히 손절하며 조선구마사는 단 2회 방영 만에 조기폐지되는 불명예를 얻게 되었다.

특히 중국 동영상 사이트에서 조선구마사를 북한이 건국된 역사적 기원을 다룬 드라마로 소개하면서, 드라마 속 중국풍이 동북공정의 연장선에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받게 된 것이 국민의 역린을 건드린 치명타가 되었다.

중국이 2002년부터 추진해온 ‘동북공정’은 중국 국경 안에서 벌어진 모든 역사, 특히 고구려나 발해를 포함한 한반도 역사를 중국의 일부로 만들기 위한 연구 프로젝트로, 이를 문화 측면으로 확장한 것이 바로 ‘문화 동북공정’이다. 실제로 지난 2011년 중국은 “조선족이 중국의 소수민족이므로 이들이 부르는 노래 ‘아리랑’도 중국의 문화다”라며 연변 조선족자치주의 아리랑을 중국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 했지만 실패한 사례가 있었다. 이후에도 우리의 한복은 물론, 전통음식인 김치와 삼계탕도 중국이 원조이고, 심지어 민족시인인 윤동주까지 중국인이라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대중 외교에 있어 저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중국의 ‘알몸김치’ 논란에 대해 식약처 직원이 “중국을 대국, 한국을 속국”으로 표현하며 “감히 중국에 답변을 요구할 수 있겠냐”며 당연한 듯 걱정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최근 정의용 외교부 장관도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데 반해, 중국에 대해서는 “양국 간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며 애매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같은 역사왜곡 문제를 두고 중국에게만 이토록 관대한 이유는 무엇인가. 경제적 이유라 하기엔 ‘역사’가 주는 무게감이 너무 거대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그런 이유로 역사를 빼앗긴 민족에게도 미래는 없을 것이다.

이승기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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