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국제결제은행(BIS)은 ‘그린스완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린스완이란 기후 관련 위험을 뜻하는 용어로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경고하며 사용된 블랙스완이란 용어에서 파생됐다. 그린스완은 블랙스완과 마찬가지로 발생 가능성이 극히 낮지만 한번 발생하면 큰 충격과 막대한 파급 효과를 갖는 위기를 지칭하며 과거의 경험치를 이용해 분석할 수 없다는 특징을 지닌다. 하지만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어느 정도 예견할 수 있고 발생 시 복잡한 연쇄 반응을 일으키며 전 세계적으로 대대적인 변화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블랙스완과 차이를 보인다. BIS 보고서에서는 그린스완의 파급 효과가 광범위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금융안정을 위해 각국 중앙은행들을 중심으로 치밀한 예측이 요구되며 규제 및 감독 측면에서의 국제적 공조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이어 발표된 BIS의 두 번째 그린스완 보고서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위기를 대표적인 그린스완으로 분류하면서 코로나19의 사회·경제적 충격을 교훈 삼아 기후 관련 위험에 대비할 필요성을 인식시키는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위기를 낭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과학자들이 경고해온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는 이미 가뭄, 산불, 폭우 등의 형태로 현실화되고 있다. 극단적 날씨와 해수면의 변화가 지금 당장 금융시스템에 결정적 위협을 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향후 금융안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충분하다. 직접적으로는 보험 청구건이 늘어나게 되고 담보자산의 가치가 하락하는 등 경제적 비용과 금융시장에서의 손실이 야기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는 사회적 관념이 변화하고 탄소세 등 기후관련 정책이 급격히 도입되는 전환기적 과정에서 금융불안이 초래될 수 있다. 이에 기후변화로 인해 금융시스템에 발생하는 리스크를 측정하고 대응하기 위해 각국 금융당국들이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2017년 12월에 설립된 NGFS(Network for Greening the Financial System)를 들 수 있는데 이는 기후변화, 환경 리스크, 녹색금융 관련 작업 촉진을 목적으로 설립된 중앙은행 및 감독기구의 자발적 논의체로서 현재 89개 회원기관과 13개 옵저버가 참여하고 있다. 한국은행도 2019년 11월부터 동참해 기후 및 환경 관련 금융리스크에 관한 국제논의에 참여하고 대응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최근에는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중앙은행이 기후변화 문제와 관련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으며, 통화정책이 아닌 금융규제 권한을 활용해 접근한다면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고유책무를 해치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2020년 코로나19가 가져온 혼란과 변화는 느닷없이 우리 생활에 들이닥쳤다. 이코노미스트지에서는 ‘팬데믹의 경험은 마치 기후위기를 빨리감기로 보는 것과 같다’고 표현한 바 있다. 코로나19 만큼 급작스럽지 않은 것은 사실이더라도 기후위기 역시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무시할 수 없는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또한 팬데믹 자체를 기후위기의 파편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다행인 점은 탄소중립을 위한 정부와 민간차원의 대책이 국내외에서 구체화되고 있으며 그린스완으로 금융시스템이 붕괴되는 일이 없도록 금융당국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는 사실이다.
박영진 한국은행 경기본부 기획금융팀 과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