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를 키운 건 8할이 독서였다. 무인도에 딱 한 가지를 가지고 들어가야 한다면 주저 없이 책을 선택하리라. 읽을 책만 있으면 행복하고 근심 걱정이 사라지니 이쯤 되면 책은 최고의 친구다.
초등학교 시절 우연한 계기로 펄벅의 ‘대지’를 읽게 되었는데 주인공 왕룽 일가의 이야기에 푹 빠졌고, 책이 주는 대단한 즐거움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후로 독서의 세계로 들어섰다.
청소년 시절 서양의 고전과 한국 근대소설을 거쳐, 대학시절엔 전혜린, 시몬느 드 보봐르 그리고 루이제 린저의 소설 ‘생의 한가운데’의 주인공 니나에게 심취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당시 가부장적인 관습 속에서도 뜨거운 열정과 신념과 지성으로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행동과 사상을 전파한 여성들이다. 당시 이들처럼 살고 싶었던 필자의 열망이 투영되었던 것 같다.
대학원에서 언론을 전공하던 시절에는 주로 사회과학책을 많이 읽었는데, 이때 읽은 책 덕분에 사회와 사물에 대해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분석력과 통찰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후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독자적이고 신선한 매력을 발견했다. 주로 그의 에세이를 읽었는데 문화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세계관, 대상을 표현할 때 적확하고 세밀한 묘사, 광범위한 지식 체계, 규칙적인 글쓰기 작업에서 보여주는 성실함 등이 필자의 의식 세계에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
최근엔 하루키가 영향을 받았다는 레이먼드 챈들러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들을 읽었다.
챈들러는 하드 보일드 소설의 대표적 작가로, 하루키는 그의 소설 기법뿐만 아니라 자신의 엄숙한 글쓰기 자세를 챈들러 방식이라 부를 만큼 그에게 깊은 영향을 받았다.
나쓰메 소세키는 100여 년 전에 살았던 작가인데도 인물에 대한 묘사와, 인간 내면에 대한 탐구가 현재의 시점에서도 생생하게 느껴져서 그가 ‘일본의 셰익스피어’로 비유되는지와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를 재인식하게 되었다.
책 안에서 발견한 또 다른 작가의 책을 찾아 읽는다는 것은 새로운 행성에 발을 내딛는 것만큼이나 놀라운 경험이다.
필자가 좋아하는 책들의 유형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졌음을 발견하게 된다.
아마도 인생의 과정 속에서 변화하는 가치관이나 관심사에 따라 책의 유형 또한 바뀌는 것이리라.
그래서일까 다음엔 어떤 책들을 만날지 궁금하고 설렌다. 미지의 책을 만나 어떤 교감을 하고, 성장해갈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우연히 발견한 독서에 대한 취향은 행운임이 틀림없다. 코로나로 인해 집 안에만 머물러도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국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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