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9대 국회에서 원폭피해자지원특별법이 만들어졌다. 원자폭탄이 투하된 지 71년만으로 나름 의미가 컸다. 특별법에는 지원 위원회 설치, 피해자 실태조사, 피해자 의료 지원, 위령탑 조성 등이 담겼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게 빠졌다. 재앙의 대물림, 즉 2·3세 문제다. 법은 이들을 피해자로도, 지원 대상으로도 규정하지 않았다. 소홀히 다뤄진 이유는 유전의 확증이 없다는 것이었다.
피해자 가슴에 대못을 친 일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04년 자료가 있다. 원폭피해자 후손의 높은 발병률이다. 일반인보다 우울증 93배, 백혈병 70배, 빈혈 52배, 정신질환 36배다. 포괄적인 유병률은 무려 100배에 가깝다. 여기에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현실도 심각하다. 피폭자 자손과의 결혼을 꺼리는 문화가 있다. 피폭자 후속을 병자 대하듯 하는 사회적 편견도 크다. ‘유전 근거 없다’ ‘피해 근거 없다’가 얼마나 황당한지 알 수 있다.
지방 정부의 이런저런 노력이 있었다. 경남 합천은 원폭피해자가 가장 많은 곳이다. 당연히 원폭 피해자 후손 문제도 가장 심각하다. 2011~2012년 경남도와 합천군이 조례를 만들었다. 2·3세까지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조례’다. 하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상위법의 근거하지 못한 한계였다. 경기도의 노력도 아주 최근에 있었다. 2019년 제정한 경기도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 조례안이다. 역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본보 취재진이 원폭 피해자들을 둘러봤다. 짧은 시간, 일부를 본 것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그 실상에 놀랐다. 평택에 있는 사단법인 한국원폭피해자협회는 허름하기 짝없다. 사무실 기능도 거의 잃었다. 경기도는 일제 징용 피해자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원폭 피해자도 그만큼 많았다. 현재도 180명 정도의 원폭 피해자가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당연히 훨씬 많은 2·3세가 있을 것이다. 이런 경기도인데 이렇다.
정부의 일이라 본다. 탈원전은 문재인 정부의 1호 대표 정책이다. 취임 첫해인 2017년 ‘고리 1호기’를 영구 정지했다. 그 해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공사도 중단했다. 정책의 기본 철학은 ‘원자력으로부터의 안전’이다. 이를 인류 공영의 가치라고 수없이 강조해왔다. 그런데 우리 옆에 원자력 피해자가 이렇게 방치되고 있다. 병증의 인과관계가 명백한 2·3세들이 외면받고 있다. 이래서야 ‘탈원전 정부’라 할 수 있겠나.
일본에 끌려가 원폭 피해까지 본 피해자들이다. 그들의 후손이라서 질병 얻고 차별받은 후손들이다. 이들을 구호하는 것이 탈원전이다. 진정한 반일이자 극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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