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갑자기 사라진 종족-수원 지역 정치인

오래전 일인데 생각난다.

쓰레기 봉투값이 올랐다. 인상 폭이 아주 컸다. 기억에 두 배는 됐을 거다. 시장 결정이었다. 시민 불만이 컸다. 주부들은 분노했다. 그래도 시장은 꿈쩍 안 했다. 풀어 가는 논리가 이랬다. ‘쓰레기 봉투값을 올려야 한다. 그래야, 가격에 부담을 갖는다. 그러면, 쓰레기 배출량이 줄 것이다. 결국, 환경을 살리는 길이다.’ 소신이 워낙 강했다. 거의 시민을 교육하는 수준이었다. ‘그리 알고 따라 오라’였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KBS 마감 뉴스에 출연했다. 쓰레기봉투를 들고나갔다. 역시 자신 있게 설명했다. 듣고 있던 앵커가 작심한 듯 말했다. “저의 동네라면, 시장께서는 선거에 떨어질 겁니다.” 거칠게 던져진 경고였다. 그리고 현실이 됐다. 시민 저항이 거세졌다. 안 겪어도 될 고행(苦行)이 시작됐다. 검찰 정보관은 시청을 대놓고 뒤졌다. 결국, 구속-훗날 무죄-됐다. 적수가 없다던 그였지만 다음 선거에서 졌다. 회복하기까지 긴 세월이 걸렸다.

재선이 화(禍)였다. 그에게 시민이 달라졌다. 섬길 대상에서 가르칠 대상이 됐다. 시정도 달라졌다. 소통 행정에서 강행 행정이 됐다. 반면, 시장을 보는 시민 시각은 그대로였다. 시장은 여전히 시민을 모셔야 했다. 여전히 충실한 공복(公僕)이어야 했다. 시장과 시민의 이 차이가 ‘교만’이 됐다. 1년의 옥고, 낙선의 좌절, 재기의 고통…. 모두 거기서 출발했다. 존경받는 수원 정치인 고(故) 심재덕, 이 또한 그가 남긴 교훈이다.

공공기관 이전이 시끄럽다.

도 공공기관 16개가 북ㆍ동부로 간다. 그중에 12개가 현재 수원에 있다. 수원 지역에는 악재다. 경기주택도시공사가 권중로 46번지에 있다. 이들을 손님으로 받던 밥집, 맥줏집들이 꽤 된다. 경기문화재단은 서둔로 166번지다. 단골 삼던 삼겹살집, 횟집이 많다. 기관 빠져나가는 곳이 다들 이렇다. 국가기관을 대규모로 빼앗겨 본 수원시민이다. 20년 가까이 이어지는 공동화ㆍ공백을 잘 안다. 그래서 걱정이 여간 크지 않다.

그런데 지역 정치권은 이상하다. 국회의원이 말이 없다. 시장은 차분하다. 도의원들은 성명을 냈는데, 오래갈 것 같지는 않다. 시의회 집행부가 항의방문했는데, 도지사실이 아니라 도 의장실이다. 나오는 얘기도 이상하다. ‘균형발전 필요하다’ ‘북ㆍ동부 지원 동의한다’…. 맞긴 한데, 수원 정치가 지금 남 걱정할 땐가. ‘지역 피해 없다’ ‘다시 채워질 것이다.’…. 한 집 건너 공실(空室)이다. 뭔 재주로 이 구멍들을 채울 건가.

지역 정치인은 지역을 대의(代議) 한다. 그게 분수에 맞는 것이다. 공공기관을 옮기는 일이다. 경기 북ㆍ동부 주민은 환영한다. 그래서 북ㆍ동부 지역 정치인들도 환영하고 있다. 잘하는 것이다. 분수에 맞는 일이다. 수원 주민은 반발한다. 그러면 수원 지역 정치인들도 반발해야 한다. 그런데 그러지 않는다. 거물이 많다보니 맘대로 판단한다. 균형론 말하고, 북부 발전 얘기한다. 멋진 정치로 보일진 모르나, 분수에는 안 맞는다.

‘쓰레기’ 때는 당당이라도 했다.

심재덕 시장이 그랬다. ‘환경 살리겠다’고 외쳤다. 책임지겠다고 했다. 혹독한 대가도 치렀다. ‘공공 기관 이전’엔 그런 게 없다. 삐딱히 가는 건 틀림없다. 그런데 그 속을 말하는 이가 없다. 공공기관 12개가 왕창 빠지는 일이다. 당연히 입장을 밝혀야 한다. 지역 정치인의 존재 이유다. ‘받아들이겠다’는 건가. ‘못 받아들이겠다’는 건가. 말해야 한다. 언제까지 반대 시늉 하면서 정치 눈치를 볼건가. 주민 분노는 이제 ‘주민소환’까지 갔다.

원래 저렇지들 않았다. 누가 봐도 뻔한 이기주의, 그런 데까지 찾아가 함께 했다. 누가 봐도 뻔한 입장, 그런 발표까지 TV 앞에서 했다. 누가 봐도 뻔한 동네 민원, 그런 일에도 ‘지방 사무’라며 모른 체하지 않았다. 그러던 이들이 저렇게 변했다. 왜? 열심히 반대 중인 A와 통화했다. “다들 공천도 있고, 정치 일정도 있고…나도 조금만 해야지.” 맞다. 이게 본질이다. 그들은 개인의 목적과 시민의 요구를 바꿔 먹고 있다. 집단의 교만이다.

주민소환 사유로 충분하다. 수원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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