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했던 전두환 세력 몰락
사면된 죄인에 필연적 과정
다스·최순실 인정 후 사면
사면 받은 이의 자세는 아니었다. “새로 선출된 김대중 대통령을 중심으로 밤낮 가리지 않고 열심히 뛰면 이 경제의 대난이 선진조국 건설의 신화를 창조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이다.” 흡사 현직 대통령의 대국민 훈시다. 기자가 교도소 생활 어땠냐고 물었다. 유머까지 섞어 답한다. “교도소 생활이라는 게, 여러분은 교도소 가지 마쇼. 내가 그거만 얘기하고 싶습니다.” 안양교도소 나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 그는 아직 몰랐다.
그게 마지막 대통령 놀이였다. 그 후론 들어줄 국민도 없었다. 보호 없인 다닐 수도 없었다. 허튼 유머에 웃어줄 이도 없었다. 허락된 재산은 ‘29만원’이 다였다. 이를 옥죄는 주홍글씨가 있었다. 내란 목적 살인 범죄 확정자, 뇌물 수수 범죄 확정자 등. 사면은 과거 정적(政敵)이 베푼 은혜일 뿐이었다. 육신(肉身)만 옥(獄) 밖에 있는 거였다. 여생을 죄인으로 보내야 했다. 늘 속죄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사면받이’의 운명이었다.
그날, 노태우 전 대통령도 나왔다. 서울구치소 앞에 섰다. 영접도, 훈시도 없었다. “나중에…”라는 손사래가 전부였다. 말없이 차에 올랐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후 그는 국민 앞에서 사라졌다. 사죄 뜻만 계속 밝혔다. 그렇다고 여생이 다르지 않다. 그 역시 ‘사면받이’ 처지다. 평생을 갇혀 지내고 있다. 대법원 확정 형량은 15년이다. 이미 10년 전에 만기는 지났다. 징역 24년을 사는 꼴이다.
안양교도소를 보던 지지자들이 있었다. 5공화국 세력이다. 전두환 출소일은 그들의 부활일이라고 믿었다. 그날만 기다렸다. 부질없는 기대였다. 세상은 그들을 팽개쳤다. 역사 속 부패 집단으로 규정했다. 정치? 곁도 안 줬다. 유권자들이 막았다. 세상을 뒤집은 16대 총선의 낙천ㆍ낙선 운동, 그건 5공 잔재의 완전한 청소였다. 그제야들 눈치 챘다. 너도나도 관계 끊고 줄행랑쳤다. 전두환 사면이 선언한 전두환 시대 종말이었다.
중세 사면은 왕의 은총이었다. 어원이 ‘그나데’(gnade)다. 고대 독일어는 ‘ginada’다. ‘도움을 청한다.’ 여기서 ‘자비로운 찌르기’(coup de grace)가 나왔다. 빨리 죽여주는 은혜다. 교수형보다 빨리 죽을 수 있는 칼(刀)형이다. 그걸 은총이라 했다. 사면에 얽힌 잔인한 역사다. 생각하면 지금과 다르지 않다. 확정된 죄인이 대상이다. 지금과 같다. 정해진 형을 빨리 끝내준다. 지금과 똑같다. 권력이 주는 배려다. 지금과 완전히 같다.
‘은혜 받은 죄인.’ 모욕일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안했다. 대통령 했고, 노벨상 받았다. 사면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하지 않았다. 복잡한 길을 택했다. 임기가 다 끝나고 나서 재심을 청구했다. 그리고 법원에서 무죄를 받았다. ‘사면은 역사에서 유죄다…판결로 바로 잡아야 한다…재심에서 무죄 받아야 한다….’ 그는 이걸 안 거다. 비로소 역사는 고쳐졌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이 ‘김대중 내란 음모 조작 사건’으로 정정됐다.
그래도 사면을 원한다면. 각오할 게 있다. 분에 넘는 짓 할 생각 버려야 한다. 당당할 생각 추호도 말아야 한다. 반성문 더 한 것도 써낼 각오 해야 한다. 출소 후에 무죄 주장? 정치 탄압 주장?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비전향 장기수들이 있었다. 전향서 안 써서 30년 살았다.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용서 빌 일 없다고 버텼다. 독해서가 아니다. 그게 사면 본뜻에 맞다. ‘죄 없는’ 출소는 판결(判決)이다. 사면(赦免)은 ‘죄 있는’ 출소다.
이제 ‘그들’의 선택이다. ‘다스는 내 것’이라 써내고 사면받아도 된다. ‘최순실 돈은 내 돈’이라 써내고 사면받아도 된다. 다만, 이 경우 ‘그들’의 앞날은 역사에 써 있다. 용서받지 못한 사면과 참담한 사면받이 인생으로 말이다.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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