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새 닻을 올린 아메리카號

워싱턴의 하루는 분주하다. 취임 첫날은 대통령에게 가장 일정이 많은 날이며 가장 긴장되는 하루이다. 최연소 상원의원이자 최고령 대통령은 미국 역사에서 굵은 획을 긋고 있었다.

퇴임하는 대통령은 결국 취임식장에 보이지 않았다. 국민의 축복을 받으며 떠나지 못하고, 취임하는 지도자에게 무거운 짐을 던지며 홀홀히 남쪽 플로리다로 날아갔다. 역대 미국의 대통령들이 세운 고매한 전통의 성벽에 선명한 균열이 생겨나고 제46대 대통령은 심각한 부담을 안고 출발하게 됐다. 짧지 않은 분량의 취임사 대부분은 국내정치적 통합에 할애됐다. 미국 국민의 단합을 위해 영혼을 불어 넣겠다는 강렬한 레토릭까지 나왔다. 이미 깊어진 팬데믹의 상흔도 치유해야 하고, 가볍지 않은 경제적 여파도 헤쳐나가야 하지만 무엇보다 갈라진 이음새를 붙여야 하는 정치력을 보이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

첫날 저녁 바이든 대통령은 링컨 기념관으로 향했다. 16대 대통령이 남북전쟁으로 갈라진 미국을 하나로 만들었듯이, 46대 대통령은 지금 준 내전으로 비치는 분열된 미국을 단합된 나라로 만드는 것이 급선무였다.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거대한 조각상으로 앉아 있는 에이브러험 링컨 옆에 선 조셉 바이든은 연로해 보이지도 작아 보이지도 않았다. 완연한 은발(銀髮)의 새 지도자는 자신의 역사적 책무를 깊이 느끼고 있었다.

그날 오후 카메라 앞에 선 전직 대통령들은 신임 대통령이 키를 잡은 아메리카호(號)가 순항하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버락 오바마는 2009년 1월 취임 당일 전임자였던 조지 W. 부시가 덕담해 줬다는 말을 강조하면서, 국가 지도자이던 트럼프 대통령이 사감(私感)을 떨치고 미국을 위한 대의에 동참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뉘앙스를 풍겼다. 플로리다의 마러라고 리조트로 내려간 직전 대통령은 ‘위대한 패배’라는 말을 잊은 듯이 보였다.

심각한 코로나19 상황과 97세의 고령으로 이날 취임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고향 조지아의 플레인스에서 독서하고 있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역사책 속에는 새겨야 할 지혜가 많다고 속삭이는 듯하다. 정치 지도자는 동시대인들에게 비칠 이미지도 중요하고, 역사에 새겨질 한 줄은 더욱 중요하다.

팔순이 다 된 백인 대통령 조셉 바이든이 취임하던 지난 20일의 피날레는 젊은 흑인 여성 ‘아만다 고어먼’이었다. 그녀가 읊은 자작시의 구절구절을 들으며 신임 대통령은 미국민들이 오르는 언덕을 함께 힘차게 걸어갈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우리가 함께하는 단일대오(單一隊伍)의 힘만큼 미합중국은 위대해질 것이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19세기 지도자 링컨이 21세기 지도자 바이든의 등을 밀어주고 있었다. 신임 미국 대통령은 새로운 도전 앞에 서 있다.

최승현 경기도 국제관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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