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인천] 다시 문 연 소래포구 어시장 높이 솟기를

2017년 큰 불이 나서 문을 닫았던 소래포구 어시장이 지난 22일 다시 문을 열었다. 새로 깨끗한 건물을 지었으니 반갑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어시장이 있는 소래는 전국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싱싱한 생선이나 젓갈을 사려는 사람들이 다른 지역에서도 많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는 만큼 그 이름의 유래는 널리 잘못 알려져 있다.

‘소래’는 흔히 고대 신라의 3국 통일전쟁 과정에서 중국 당나라의 장수 소정방(蘇定方)이 군사를 이끌고 황해를 건너와 이곳에 주둔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라고 해석한다. “소정방(蘇:소)이 왔다(來:래)”는 뜻이라는 말이다.

하지만『삼국사기』만 봐도 소정방이 당시 이곳에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확실한 기록은「김유신 열전(列傳)」의 이런 대목이다.

“…이때 당나라에 갔던 파진찬 김인문이 대장군 소정방·유백영과 함께 군사 13만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덕적도에 도착했다. (중략) 태자가 덕적도로 와 소정방을 만나자 그는 태자에게 ‘나는 바다로 가고, 태자는 육지로 가서 7월10일에 백제의 서울 사비성에서 만납시다’라고 하였다. 태자가 돌아와 왕에게 고하니 왕은 장병들을 거느리고 사라정(괴산 부근)에 들어섰다. 소정방 등은 연해를 따라 (금강 하구) 기벌포에 들어왔다….”

이를 보면 소정방은 인천앞바다 덕적도에서 바다를 통해 바로 기벌포에 도착했으며, 소래에는 오지 않았음이 분명히 확인된다. 소래는 소정방 때문에 생긴 이름이 아닌 것이다. 소래에 대한 해석은 몇 가지 더 있다.

그 중 가장 타당한 것은 소래가 ‘높은 곳’이나 ‘산(山)’ 또는 ‘맨 꼭대기’를 뜻하는 말 ‘수리’의 발음이 바뀐 것이라 보는 해석이다. ‘수리’는 고구려어에 나온 순 우리말로, 지금도 머리의 맨 위를 뜻하는 ‘정수리’나 하늘을 높이 나는 ‘독수리’ 등의 단어에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수리봉, 수리산, 수리고개’ 같은 이름도 여기서 생겼다.

그런데 이 수리는 지역에 따라 ‘사라, 사리, 서리, 소리, 살, 쌀, 설, 솔, 수락, 술, 시루, 수레, 싸리…’ 등의 다양한 변형을 갖고 있으며, 소래도 그 중 하나다. 주변에 오봉산 등 산이 많아 ‘수리’라 불리던 동네 이름이 발음이 바뀌어 ‘소래’가 된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한자 이름 ‘蘇萊’는 한자의 뜻과는 아무 관계없이 그 소리만을 빌려 쓴 음차(音借) 표기일 뿐이다.

새로 문을 연 어시장의 명성이 소래의 뜻처럼 다시 높이 솟기를 바란다.

최재용 인천사랑운동시민협의회 사무처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