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앞자락이라 그런지 찬바람이 수은주를 더 끌어내린다. 지금은 본격적인 김장철을 앞둔 주부들의 주름이 늘어나는 시기다. 지난해보다 김장 비용이 올랐다. 역대급 긴 장마, 5번이나 엄습한 태풍으로 양념 속 재료인 채소류의 생산량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김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라면으로 한 끼를 때우더라도 김치는 있어야 한다. 대형 마켓이나 시장에 진열된 상업용 김치가 가정의 밥상 위에 오르기도 하지만, 김장을 담그는 것은 전통이요, 문화이기에 우리는 김장을 담근다.
집집마다 김치맛의 비법은 자자손손 전해 내려오는데, 보통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전수해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김장하면 생각나는 것은 필자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이다.
3남 6녀의 대가족인 우리집은 그때 당시 200포기 정도 김장을 담았다. 체격이 남달랐던 어린 필자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배추를 지게에 지어 나르는 초동임무를 부여받았다.
배추가 쌓이고 나면 어머니와 가족들은 배추 밑동을 베어, 쩍 하고 가르며 꽁지를 딴다. 그리고 대형 ‘고무다라’(고무대야)에 노란 속을 위로 향해 차곡차곡 누이며, 굵은 소금을 한 움큼씩 뿌려 절굼한다.
김치가 절굼으로 기운이 빠지는 시간에는 무를 채를 썰어주고 다진 마늘, 생강, 고춧가루, 새우젓 등 양념 속 재료를 버무려 김치속을 준비한다. 차가워진 손을 입김으로 달래가며, 기운 빠진 배추를 깨끗한 물에 세 번에 걸쳐 씻겨준다. 버무려진 김치를 땅에 묻혀 입만 벌리고 있는 김칫독 앞에 옮기는 것으로 내 역할을 수행, 소임을 완수했다.
어깨와 허리 아파하며 마련한 김치가 항아리 가득가득 채워지는 것을 보면 왠지 모르는 뿌듯함과 든든함이 밀려왔다. 김장을 하던 중간에 김치속과 함께 먹었던 수육은 김장행사의 최고의 즐거웠던 추억으로 눈앞에 아른거린다.
이렇게 담근 김치는 한겨울 밥상, 반찬의 제일검으로 활약을 마다하지 않았다. 게다가 쭉쭉 찢어 군고구마에 휘둘러 먹으면 뜨거운 기운도 내려주며 색다른 풍미도 선사했다. 수육으로 먹었던 돼지고기를 썰어 넣어 김치찌개를 만들어 먹고, 돼지고기를 큼지막하게 썰어 김치찜도 해먹었다. 어쩌다 고등어가 돼지고기가 있던 자리를 대신하면 서운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올해는 코로나19, 기후변화 등 여러 요인으로 농민들이 많이 어렵다. 겨울철 따뜻한 밥 한 숟가락과 함께할 수 있는, 속 깊은 시원함이 올라오는 맛있는 김치를 많이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광덕 경기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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