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
-김이듬
축하해
잘해봐
이 소리가 비난으로 들리지 않을 때
누군가 꽃다발을 묶을 때
천천히 풀 때
아무도 비명을 지르거나 울지 않을 때
그랬다 해도 내가 듣지 못할 때
나는 길을 걸었다
철저히 보호되는 구역이었고 짐승들
다니라고 조성해놓은 길이었다.
《말할 수 없는 애인》, 문학과지성사, 2011.
침묵은 말의 시작이고 완성
언어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은 『논리-철학논고』를 쓰고 난 후 철학의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고 자부했다. 경제학자 케인즈(John Maynard Keynes)는 그의 출현을 “신이 도착했다!”는 엄청난 문장으로 표현했다. 사정이 그러하니 『논리-철학논고』를 읽고 이해한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 같아 포기하려다 이상한 오기가 발동해 읽기는 했는데 결과는 참패였다. 어쨌든, 『논리-철학논고』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고 회자되는 문장이 “말해질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해질 수 있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것인데, 아마도 그 문장이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려는 핵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불화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함으로써 생겨난다. 특히 자신의 생각과는 정 반대되는 것, 이를테면 맘에도 없는 말을 하는 것이 문제다. ‘빈말’은 세상을 공허하고 불순하게 만든다. 그런 말들은 급기야 상처가 된다.
김이듬 시인의 시 ?꽃다발?의 첫 구절을 읽으며 나는 ‘빈말’이 우리 일상에 얼마나 많이 떠돌고 있는지를 실감한다. “축하해”, “잘해봐”라는 말은 과연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 것일까? “이 소리가 비난으로 들리지 않을 때”라는 시인의 표현은 그런 말들이 비난이나 질투의 다른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읽힌다. 비난으로 들리지 않을 때란 비난에 무감해졌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꽃다발을 묶고 푸는 상황이나, 아무도 비명을 지르거나 울지 않을 때란 참 묘한 상황이다. 그런 상황은 인간의 욕망과 관련한다. 욕망은 채워지지 않는 결핍이기에 그 결핍을 메우려는 언행을 유발한다. 축하한다는 말은 어찌 보면 자신의 결핍을 메우려는 것이기도 하다. 비명을 지르거나 울지 않는 것도 그렇다. 이런 심리는 근원적이어서 시비(是非)를 따질 성질의 것은 아니다. 시인은 “그랬다 해도 내가 듣지 못할 때”, 즉 드러내놓고 비난하거나 시기를 해도 괘념치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시인의 그런 모습은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것처럼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인간처럼 의도를 숨기고 빈말을 하지 않는 것이 동물이다. 시인이 말하는 “짐승들 다니라고 조성해놓은 길”이란 침묵과 고독의 길일 것이다. 침묵과 고독은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자기만의 구역이다.
석가모니가 가만히 연꽃을 들어 올리자 제자 가섭이 그 뜻을 헤아려 빙그레 미소를 지은 것처럼 말의 길은 침묵을 통해 조성된다. 침묵은 말의 소멸이 아니다. 말의 시작이고, 말의 완성이다.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는 ‘빈말’의 욕망이 늘 문제다. 김이듬 시인의 시를 읽고 새삼 다짐한다. 침묵하자!
신종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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