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사람들이 다소 낯을 가리기에 금세 하나로 뭉쳐지지 않았다. 이때 마당의 각자를 너름새 있게 하나로 엮어 내는 이가 광대였다. 서먹한 처음에 질펀한 해학 그리고 촌철살인의 풍자로써 마당의 한 정서를 유도했다. 광대는 결코 자기를 내세우지 않았다. 오히려 모두의 하나 됨만을 지향해 온전히 자신을 죽였다. 광대의 희생으로 마당의 각자는 마음을 열고 마당의 우리가 되는 것이었다.
오랜 동안 각자도생의 목표만을 쫓아 너무도 바빴기에 잠시 해찰할 겨를도 없었다. 하여 마당의 하나 된 삶은 전혀 꿈꿀 수도 없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면서 우리에게도 마당의 가능성이 생겨났다. 그 마당에서 우리는 주변을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진정한 소통으로 하나의 정서를, 하나의 생각을 만들 가는, 우리 연대의 기회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최근 마당이 극성스레 열리고 있다. 분명 모두가 하나 돼 우리를 지향해야 할 마당이어야 한다. 한데 그 마당에 자신이 처한 입장만을 고집하는 앙칼진 목소리만이 그득하다. 그 목소리는 누군가를 적대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목소리는 점차 악다구니가 되어 간다. 그리고 대척된 상대방의 목소리도 또 다른 악다구니가 돼 서로 쟁명(爭鳴)한다. 소리만이 아니다. 이제 서로 다다를 수 없을 만치 거리마저 멀어진다. 어찌 그 악다구니가 서로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 그 거리는 상당하다.
우리는 터에 따르는 고유의 지평을 가진다. 지평은 세상을 보는 안목이고 또 뭔가를 결정하는 나름의 토대이다. 하여 각자의 지평은, 서로 다른 부분도 일부 있으련만 분명 서로 같이 하는 부분이 더 많다. 한데 지평이 대립하는 경우, 공유 지평은 대체로 무시된다. 그리고 서로 다른 지평만이 부각된다. 분별되는 지평으로 각자는 첨예하게 대립하기만 한다. 다툼으로 각자의 지평 나아가 개인이 차츰 왜소해 지는 지점이다. 공유의 동질감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부분을 조화로이 수용함으로써 더 성숙한 개인 나아가 하나 된 우리로 나아가는 지평 융합의 기회를 저버리는 분명한 퇴영이다.
악다구니 그득한 그 마당에서 하릴없는 필자는, 소리가 클수록, 거리가 멀수록, 벽이 높을수록 필경 그 끝은 있을 것이라고 낙관한다. 그리고 지평융합으로 더 큰 하나가 돼가는 우리 마당을 그려본다. 또 그 마당에서 자신을 죽임으로써 우리 연대를 배태(胚胎)하는 현묘한 광대의 출현을 꿈꾼다. 협량한 자기 주장이 아니라 격조 있는 해학과 지혜로운 풍자를 구사하는 참 광대를 대망하는 것이다.
이계존 수원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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