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여자
-박완호
손을 갖다 대자
그녀는
푸르고 물렁물렁한 몸을 일으키며
심장 고동을 고스란히 느끼라는 듯,
온몸이 점점 투명해져서는
나한테만은
속내를 다 까 보이기라도 할 것처럼
저를 활짝 열어젖혔다
저 차가운 이마에 손이라도 얹어줄까
모른 척 뭍으로 달아나버릴까, 하던
난 푸르디푸른 그 속내에
한순간 물들어버렸다
《누군가 나를 검은 토마토라고 불렀다》, 시인동네, 2020.
은밀하고 에로틱한 유혹의 기술
독일의 문호 괴테의 《파우스트》는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올리노라.”는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이끌어 올리노라.”는 부분은 “구원한다.”로 번역되기도 한다. 독일어에 일천한 나로서는 어떤 해석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이끌어 올린다.”에 훨씬 마음이 간다. 인간의 방황은 유혹에서 시작된다. 삶의 궁극을 하나의 동사로 표현하자면 ‘유혹되다.’일 것이다. 지식도 유혹이고, 시도 유혹이다. 사랑은 두말할 것도 없다. 삶을 고양시키는 모든 것은 다 유혹이다. 유혹과 방황은 끝없이 이어지며 서로를 끌어안고 간다.
이런 밀착의 관계를 “구원한다.”로 해석하는 것은 유혹과 방황의 생동(生動)에 종지부를 찍는 느낌을 주기에 나는 “이끌어 올리노라.”에 눈길이 간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의 의미를 ‘진리’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데, 나는 ‘유혹’이라 생각한다. 간혹 진리를 ‘여성적’이라는 것으로 특화해 진리란 남성만의 소유라는 것을 강조하는 해괴한 논리를 듣기도 한다. 그런 주장은 일천하다. 유혹적인 것은 남녀라는 위계와 구분을 넘어선 것이다. 유혹은 사랑의 속성이자 삶의 모든 것을 관통하는 미적(美的)인 힘이다.
유혹하고 유혹되는 것이 사랑의 방식이다. 박완호 시인의 시 〈남해 여자〉는 그 방식에 담긴 밀고 당김의 에로틱한 관계를 잘 보여준다. 화자는 ‘그녀’에게 손을 갖다 댄다. 문을 열기 위해 노크를 하는 것처럼 화자의 손댐은 ‘그녀’의 몸에 대한 작은 질문이자, 유혹이다. 화자의 작은 질문에 ‘그녀’는 심장의 고동소리가 들릴 정도로 “푸르고 물렁물렁한 몸”을 ‘활짝’ 열어젖힌다. 자신의 ‘속내’를 다 드러낸 그녀의 대답은 화자를 향한 적극적이고 커다란 유혹이다. 해안을 향해 밀려오는 커다란 파도처럼 솟구쳐 화자를 덮치는 유혹의 파동(波動)에 화자는 ‘이마’에 손이라도 얹을까 아니면 뭍으로 달아날까 고민을 한다. 그러다가 결국엔 그 ‘속내’에 ‘한순간’ 푸르게 물들어 버린다. 유혹하다 유혹당한 것이다. 소극적 태도에서 적극적 태도로 일순간 이끌어 올리어진 것이다. 활짝 열린 것을 보고 무조건 달려드는 것은 에로틱하지 못하다. 갈까 말까 망설이는 흔들림이 있어야 에로틱하다. 밀고 당김의 연쇄, 소극성과 적극성의 길항(拮抗)이 빚어내는 유혹의 미묘함이 있기에 시 〈남해 여자〉는 은밀하게 에로틱하다.
일방적으로 쇄도하는 사랑은 폭력적이다. 유혹으로 묻고 유혹으로 대답하는 것이 사랑이다. 대답이 없다면 다른 사랑을 찾아야 한다. 세상은 넓고 유혹할 대상은 많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사랑은 없다는 식의 단순한 신조(信條)는 위험하다. 사랑은 신조의 들이댐이 아니라 유혹의 기술이다.
신종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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