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예사인 그녀의 도움으로 박물관 이곳저곳을 차분하게 돌아본다. 가지런하게 정리된 각종 표본과 분석 자료를 감상하면서 훔볼트는 평범하지 않은 자연과학 탐험가라는 느낌에 흠뻑 빠진다. 하지만 오전에 이곳을 찾은 관람객은 우리 부부가 처음이라고 하는 것을 볼 때 찾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 덕분에 학예사와 한 시간가량 호젓하게 훔볼트 박물관을 둘러보는 호사를 누린다. 전시물에 관심을 보이자 그녀는 개방하지 않은 곳까지 보여주는 환대를 하고 떠날 땐 영어로 쓴 쿠바 자료까지 선물로 주는 호의를 베푼다.
아바나 구시가지 오비스포와 무라야 거리 모퉁이에 있는 이 건물은 19세기 초에 건축되었고 훔볼트 박물관으로는 1997년 10월에 문을 열었다. 무심코 지나면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이곳은 훔볼트가 동료와 함께 쿠바섬을 탐험하기 위하여 두 차례(1800.12∼1801.3, 1804.4∼5) 아바나를 방문하였을 때 머물며《쿠바섬에 관한 정치적 에세이》 집필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한 곳이다. 그는 이 책에서 과학적 엄격함과 국제적 인식, 그리고 깊이 있는 철학적 인본주의를 결합하여 쿠바의 노예 정책을 비판함으로써 유럽 제국에 정치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역작의 산실이다.
훔볼트의 쿠바 탐험 기록인 이 에세이는 섬에 대하여 쓴 첫 번째 지리학으로 간주하고 쿠바섬의 지형과 해안 그리고 자연과 기후뿐만 아니라 사회·경제 전반에 대한 분석 자료를 기록하고 있다. 훔볼트의 이 에세이는 19세기 국제 정치사에서 쿠바인들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삶의 스냅숏이다.
그는 쿠바섬에 대하여 자상하면서도 체계적인 설명과 비판적인 분석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구와 복잡한 사회 구조, 그리고 당시 쿠바 국내 정치에 대한 외세 개입과 압력으로 펼쳐지는 열대 낙원의 실상을 가감 없이 담고 있다.
박물관에는 쿠바섬의 역사와 자연에 관한 것을 관찰하여 정리한 훔볼트의 기록이 가지런히 남아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 당시 함께 살았던 가족 공간, 연구실과 표본실이 있고, 서재에는 독일 문학과 철학에 관한 3천여 권의 고서와 예술품 등 다양한 유물을 소장하고 있어 그의 삶과 학문적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훔볼트는 1800년 쿠바에 도착하여 섬의 사회적, 정치적 분위기를 설명하기 위하여 과학적 방법을 적용한다. 그것은 쿠바를 다른 카리브해 영토 중 독특한 식민지로 만든 지리적 위치, 경제, 인종 구성 및 정치적 계층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 질적 양적 데이터를 모두 사용하는 과학적 업적을 남긴다.
박태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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