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며 읽는 동시>
배추가 하는 말
구옥순
소금물에
푹 담겨 봤니?
울며
몸무게를 반쯤 줄여 봤니?
마늘에게
톡톡 쏘여 봤니?
고춧가루에게
벌겋게 터져 봤니?
김장독에 갇혀
껌껌한 땅속에서 한 달간 지내봤니?
어때!
김치로 다시 태어나는 기쁨이?
일 년 열두 달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우리 밥상에 올라오는 음식이 있다. 그건 바로 매우면서도 상큼하게 입맛을 돋워주는 김치다. 그만큼 한국인과 김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하겠다. 이 동시는 배추가 김치로 변모하는 과정을 퍽 유니크하게 보여준다. 소금물에 담겨 몸무게를 줄여야 하는 건 물론, 마늘과 고춧가루에 시달림을 받아야 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끝내는 김장독에 갇힌 몸으로 껌껌한 땅속에서 견뎌야만 하는 김치의 그 혹독한(?) 시간을 시에 담았다. 그래서 그런지 동시치곤 참 맵다! ‘어때!/김치로 다시 태어나는 기쁨이?’. 이 동시의 결미인데, 매운 김치를 입 안에 넣었을 때만큼이나 얼얼하다. 직장 관계로 외국에 나가 몇 해 동안 지내다 온 K는 다른 건 다 견딜 수가 있었는데 김치 없이 먹는 밥상이 제일 견디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치 때문에 한국 생각이 간절했다는 말도 했다. 곧 ‘김치=조국’이란 공식을 제시한 셈이다. 어느새 올해도 김장철을 맞았다. 요즘엔 김장하지 않고 마트에서 그때그때 사다 먹기도 한다지만 김장은 아직도 한국 고유의 풍습으로 전해지는 유산이다. 이 또한 이 땅에 태어난 기쁨이 아니겠는가.
윤수천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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