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목소리 커야 출세하는 세상

M군은 축구 선수답지 않게 수줍음이 많고 말이 없다. 그런데 운동경기 중에 상대팀과 몸싸움이 붙을 때는 여느 때의 M군이 아니다. 한 번은 TV에서 그의 축구팀과 다른 팀이 경기하다 몸싸움이 벌어지는 장면이 중계되고 있었다. M군은 경기에 뛰지는 않고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몸싸움이 벌어지자 용수철이 튕기듯 쏜 살처럼 자리를 박차고 달려가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는 싸움 한 가운데서 동료 선수들을 거드는 것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후 우연히 M군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자네 같이 순한 사람이 그렇게 격할 때도 있는가?’ 하고 물었다. 마침 옆에 있던 다른 선수가 ‘그렇게 해야 팀 정신이 강한 사람으로 인정받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감독이? 구단주가? 그들 눈에 팀 정신이 강한 선수로 보이려고 그렇게 했다는 뜻이다.

대학교수로 있다가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된 B의원도 비슷한 경우다. 그 역시 TV 토론 같은 때 패널로 출연해서는 차분한 논리로 학자적 식견을 잘 보여 주었었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되고서는 그런 논리나 식견은 어디로 내팽개치고 투사처럼 행동한다. 언어도 거칠고 논리도 없다. 목소리가 커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를 아끼던 사람들 입에서 ‘국회의원 되더니 사람 변했네’ 소리가 자연스레 나오는 것은 물론이다. 그 역시 관중보다는 감독이나 구단주로부터 충성심 있다는 평을 들어야 하는 M군처럼 국민 보다는 그 정당의 대주주 눈에 잘 보여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변질을 한 것일까?

이처럼 우리 조직문화가 ‘중도’에 익숙지 못하고 강경파가 득세하는 현실을 우리의 계절 때문으로 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추위와 더위의 중간 역할을 하는 봄과 가을이 너무 짧고 여름과 겨울로 우리의 네 계절이 양분된 데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이다.

서울 특파원으로 오래 근무한 일본 공동 통신의 구로다 가쓰히로 기자는 몇 년 전 ‘한국인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책을 썼는데 한국의 봄이 바로 여름으로 뛰어가고, 가을 역시 짧게 끝나며 겨울이 되듯, 한국인은 1을 얻으면 2가 아니라 5, 10을 잡으려 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중간’은 없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공감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계절이 주는 조직문화를 그 나름 관찰한 것이 이채롭다.

그래서 우리의 계절이 그렇게 중간이 짧고 더위와 추위, 두 계절로 양분되듯이 정치 투쟁이나 노동운동도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 로 나뉘고, 중도는 설 자리가 없는지 모른다. 오히려 중도는 기회주의자로 매도되고 국회의원 선거 때는 공천도 못 받는 신세가 되는 것이 우리 현실이 아닌가.

사실 처세하기는 강경노선에 서기 쉽다. 목소리만 크게 내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도는 처세하기가 매우 어렵다. 중도는 원칙의 포기가 아니며 원칙에서 합리적인 공간과 시간을 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도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어느 나라든 강경파가 주도하는 것 같지만 결국 ‘용기 있는 중도파’가 역사를 이끈다는 사실을 수없이 보아 왔다.

진보든, 보수든, 여당이든 야당이든, 이 난국을 헤쳐나가는 데는 강경파보다 중도의 자리가 넓어져야 하고 중도의 목소리가 커져야 한다. ‘용기 있는 중도’의 목소리를 이 짧은 가을 기대해 본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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