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춘 카리브의 섬나라 쿠바 여행 에세이] 에피소드2-②

안토니오 마세오 공원에 있는 ‘안토니오 마세오’ 장군 동상

‘까스띠요 데 산살바도르 데 라 뿐따’ 요새에 도착한다. 이곳은 해적의 공격으로부터 아바나를 방어하기 위하여 1582년 스페인 펠리페 2세의 명에 따라 1590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40년 걸려 완공하였다. 올드 아바나에 있는 여러 방어 요새 중에서 ‘모로 성채’와 함께 군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지만, 아쉽게도 1762년 영국의 쿠바 원정대의 침공으로 심각한 손상을 입은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요새에서 잠시 카리브의 정취에 취해 본다. 출렁이는 옥빛 바다 왼쪽에는 웅비하는 아바나의 신도시가 보이고 마주 보면 위풍당당한 모로 성채가 있으며 오른편으로는 올드 아바나 역사지구가 펼쳐진다.

모로 성채 쪽으로 걸어가면 영국과의 해전에서 입은 포탄의 흔적도 볼 수 있다. 푼타 쪽에는 3개의 거대한 포대가 당시 치열하였던 전투를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쿠바 정부는 2002년 요새 복원공사를 마무리하고 현재 해양군사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곳에는 요새의 역사와 건축, 해군 전함과 자료, 그리고 수중 고고학에 관한 자료를 골고루 갖추고 있다.

▲ ‘까스띠요 데 산살바도르 데 라 뿐따’ 요새의 위풍당당한 모습
‘까스띠요 데 산살바도르 데 라 뿐따’ 요새의 위풍당당한 모습

요새를 뒤로하고 ‘안토니오 마세오’ 공원 쪽 말레콘 방파제를 따라 걷는다. 가는 길에 낚시하는 아바나 젊은이들을 만난다. 그들은 고기잡이보다는 자연과 유유자적 유희를 즐긴다.

한쪽에서는 바다 가마우지가 하늘로 날아올라 배회하다 수면 아래 물고기가 시야에 들어오면 비호처럼 낙하하며 먹이를 사냥한다. 십중팔구는 실패하나 운 좋은 녀석은 성공하여 먹잇감을 물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먹고 먹히는 자연의 일상이 한 폭의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쪽빛 푸른 파도가 쉬지 않고 바위에 부딪히고 부서지면서 물보라를 일으킨다. 자연의 소리에 눈과 귀를 내어주고 느릿느릿 걷는다. 카리브해를 뒤로하고 올드 아바나 역사지구 뒷골목으로 간다.

1874년 신 고딕 양식으로 지은 ‘까필라 라 인마쿨라다’ 교회는 콜로니얼시대 중남미 다른 나라 교회보다 소박하다. 쿠바 혁명 후 한동안 여학교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성당으로 복원되었다. 건물 밖에서 10개의 뾰쪽한 종탑 형태의 옥상 구축물과 아치 형태의 창문을 바라보면 신 고딕 양식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교회를 나와 몇 블록 뒷길로 접어들자 현지인들이 사는 주거지역이 빛바랜 사진처럼 펼쳐진다. 화려하고 깨끗한 역사지구와 달리 이곳은 아바나의 가려지지 않은 속살을 볼 수 있다. 뒷골목에는 쿠바의 어려운 경제 사정과 이데올로기의 허상이 눈에 들어온다. 즐비한 콜로니얼 건물들이 방치되어 있고 그들의 경제 사정을 고려할 때 언제 복구될지 알 수 없어 안타깝다.

무엇인가 배급받으려 길게 줄지어 기다리는 군상들과 의욕을 체념한 것처럼 비치는 무표정한 모습을 볼 때, 그들과 눈 맞춤을 할 수 없어 먼 허공을 쳐다보며 큰길로 발길을 재촉한다. 갈리아노와 아니마스 골목길을 따라 파세오 델 프라도 공원길을 향하여 빠르게 걷다 보니 현지인의 위험 구역(?)에서 벗어난다.

▲ 아바나의 가려지지 않은 뒷골목의 속살
아바나의 가려지지 않은 뒷골목의 속살

박태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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