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국민은 출두조사 - 장관은 서면조사

법무장관·검찰 오간 서면조사
MB 정권 욕하던 그 특권 그대로
공정 잃은 절차, 신뢰 잃은 결과

대다수 국민의 경우다. 고발당하면 입건된다. ‘출두하라’는 통보를 받는다. 검찰 대기실에서 초조히 기다린다. 호출이 오면 검사실로 들어선다. 철제 의자에 앉아 심문을 받는다. 거친 다그침의 연속이다. 모욕적 취급을 받기도 한다. 1차 조서, 2차 조서까지 작성한다. 시뻘건 인주를 엄지에 묻힌다. 조서에 일일이 간인한다. 수사관이 건넨 휴지로 닦는다. ‘가서 기다리라’는 귀가 허락을 받는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 검찰 출두다.

이에 비해 황제급 조사가 있다. 서면조사라는 거다. 검사가 질문을 적어 보낸다. 피조사자가 답변을 써 전한다. 대기실, 철제의자, 대면 추궁…다 생략된다. ‘안방에 앉아 받는 조사’다. 누구나 요청은 할 수 있다. 관건은 결정권자다. 전적으로 검사의 결정이다. 검사가 ‘상당하다’고 인정해야 허락된다(검찰사건사무규칙 제13조). 일반인은 안 해준다. 거의 안 해준다. 무서워 요청도 못 한다. ‘서면 질의 보내라’며 버틸 배짱이 없다.

서면조사를 남발했던 정권이 있다. MB 정권 검찰이다. 대통령 아들 사건이 그 중 하나다. 내곡동 사저 매입으로 수사받았다. 조사 기간만 8개월이다. 검찰에 나오지 않았다. 서면 조사로 끝냈다. 결과는 무혐의다. MB 측근 임태희ㆍ장정길 사건 때도 그랬다. 출두 없이 서면 조사로 다 끝났다. 역시 결과는 무혐의다. 야권ㆍ언론이 비난했다. ‘답변서를 내 주십사라는 간청 수사다…수능을 집에서 가정교사와 상의해 풀게 하는 꼴이다….’

그랬던 서면조사를 또 본다. 국민이 지켜 본 장관 수사다. 법률적 신분은 피고발인이다. 참고인보다 중하다. 장관실로 매일 출근한다. 검찰청과 지근거리다. 신병을 앓았다는 얘기도 없다. 출두 불가 상태가 아니다. 나머지 참고인들은 다 불렀다. 군(軍) 관계자에, 당시 당직 사병까지 불렀다. 그들의 핸드폰까지 추적했다. 그런데 피고발인인 장관은 부르지 않았다. 서면조사로 끝냈다. 그리고 결론 냈다. ‘피고발인 추미애 무혐의.’

대검 중수부 출신 P가 있다. 특수수사에 1인자로 정평 있다. 그가 한 회고담에 이런 게 있다. “수사는 결국 피의자와 수사관의 말싸움이다. 작은 거짓말을 파고들어가 정황을 입증하는 과정이다.” 그의 말이 맞다. 심문이 오가면서 거짓말을 찾는다. 그 거짓말을 추궁하며 파헤친다. 대면조사를 해야 가능한 일이다. 서면 조사는 이런 과정을 포기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캐낼 생각이 없는 것이다. 이러니 대부분의 서면조사 결과가 무혐의다.

없어야 할 혼란이 생겼다. 추 장관이 밝혔다. ‘보좌관에게 지원장교 전화번호를 전달한 것을 두고 지시라고 볼 근거는 없다.’ 도무지 상식에 맞지 않는 논리다. 이런 불일치를 추궁해 결론 내는 게 검찰이다. ‘그러면 전화번호를 왜 준 것이냐’고 묻고, ‘보좌관의 보고는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고 따졌어야 했다. 이걸 검찰이 하지 않았다. 추궁하지 않은 것 같다. 남겨진 의혹을 놓고 이제 국민끼리 싸운다. 서면조사의 후유증이다.

법 앞의 평등이라 한다. 결과의 균등이 아니다. 절차의 공평이다. 죄 없는 군 관계자들이 출두했다. 추 장관도 출두했어야 평등이다. 증언했던 당직 사병이 심문받았다. 추 장관도 심문받았어야 평등이다. 방문조사 방법도 있었다. 제3의 장소 조사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추 장관은 다 안 했다. ‘세상 편한’ 서면으로 다 끝냈다. 무혐의? 유혐의? 뭘 더 따져보겠나. 절차부터 기울어진 조사다. 국민이 납득 못할 불평등 수사다.

서면 조사는 권력의 특혜다. 그 특혜는 국민엔 앙금이다. 그 앙금은 권력 이후 칼이 된다. 서면 조사로 무혐의 됐던 대통령의 아들, 그 대통령 아버지는 권력이 기운 뒤 감옥에 갔다. 서면 조사로 무혐의 됐던 권력의 실세, 그 최경환도 ‘朴 정권’이 몰락하자 감옥 갔다. 이런 섬뜩한 예가 더 필요한가. 밤을 새워도 남을 만큼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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