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연애
-장석주
가을은 끝장이다. 여러 개의 파탄이
한꺼번에 지나간다. 양파를 썰자 눈물이 난다.
개수대 아래로 물이 흘러들어간다.
당신이 떠난 뒤 종달새는 울지 않는다.
장롱 밑에서 죽은 거북이 나오고
우리는 잦은 불행에 대해 무뎌진다.
접시를 깬다, 실수였다, 앞니마저 깨진다.
분별이 무서워서 분별을 멀리했다.
짧은 황혼 속에서 빛이 희박해지면
나무는 어둠 속에서 목발을 짚고 일어선다.
누군가 허둥거리고 물이 얼자
인도네시아에서 온 원숭이들이 웅크린 채 잠든다.
우리가 하지 않은 연애는 슬프거나 치졸했다.
이별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고
여름과 겨울이 열 번씩 지나갔다.
날씨는 늘 나쁘거나 좋았다.
영혼은 무른 부분에서 부패를 시작한다.
나는 빨리 늙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헤어진 사람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문학동네, 2019.
화상통화로 연인의 안부를 묻고, 문자로 이별을 통보하는 요즘의 풍속은 참 많은 것을 사라지게 하는 것 같다. 오래되고 느린 것을 답답하게 여기는 초스피드의 세태는 이별의 아픔도 사치스러운 감정으로 치닫게 한다. 그래서 와이파이 시대의 사랑은 가볍다. 끊기면 모든 게 끝이다. 돌아보지도 않고 살펴보지도 않는다. 이런 나의 생각이 과하다거나 시쳇말로 구리다고(?) 할 여지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사랑이란 단칼에 끊어낼 수 있는 손쉬운 감정이 아니다. 그래서 사랑은 결코 쿨하지 않다. 거슬리는 것 없이 시원시원한 일방통행의 사랑은 없다. 이별도 그렇다.
장석주 시인의 시 ?오래된 연애?는 “여름과 겨울이 열 번씩 지나”가도 절대 잊혀지지 않는 이별의 아픔과 후회의 심사를 고백하는데, 그 아픔이 “가을은 끝장이다.”라 할 만큼 깊다. 또한 “여러 개의 파탄이 한꺼번에 지나”갈 정도로 힘겨워 보인다. 왜 오래된 연애가 끝장나고 파탄이 났을까? 이런 의문은 섣부르고 지나치다. 세상의 어떤 사랑도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오래된 연애를 기억하고 돌아보는 태도다. 양파를 썰고, 눈물이 나고, 개수대에 물이 흘러 들어가고, 장롱 밑에서 죽은 거북이 나오고, 종달새는 울지 않고, 접시가 깨지고, 원숭이처럼 웅크린 채 잠이 드는 일련의 상황 묘사는 자신의 일상과 의식이 혼미하고 온통 아픔에 잠겨 있음을 보여준다. 이만큼 아파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랑이 깊었다는 증표다. 불행에 무뎌지고, 분별이 무서워 분별을 멀리함으로써 “이별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지만, 그 시절의 사랑을 잊을 수 없어 “영혼은 무른 부분에서 부패”가 시작될 만큼 고통스럽다. 그래서 “나는 빨리 늙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표현이 더없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그런 고백은 아주 깊은 사랑을 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사랑의 끝에는 헤어짐이 있다. 실수와 잘못에 의해서든 아니면 죽음에 의해서든 헤어짐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사랑과 이별의 역설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는 깊이 사랑하고, 오래 기억하는 것이다. 그런 자세가 없다면 우리의 사랑은 슬프거나 치졸해질 뿐이다.
신종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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