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실학자가 집대성한 음식 레시피, 임원경제지 정조지(鼎俎志)

임원경제지 정조지

조선시대는 남자들의 부엌 출입이 금기시됐다. 양반 자제가 부엌에서 요리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서유구(1764~1845)는 양반이라는 체면과 허식에 구애받지 않고 직접 요리하고 만들었다. 그가 쓴 방대한 분량의 백과사전 <임원경제지>의 16개 지(志) 중 음식요리 백과사전인 <임원경제지 정조지(鼎俎志)>(풍석문화재단 刊)가 임원경제연구소번역으로 출간됐다. 그 시대 1천500여 가지의 음식요리법을 집대성한 전통 먹거리 백과사전이다.

정조지엔 전통먹거리들의 식재료 및 각종 요리법, 술과 절기 음식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떡’만 해도 시루떡, 과일떡, 무떡, 불떡, 아랍부꾸미, 외랑병 등 97가지다. 여행이나 산행길에 빠뜨릴 수 없는 휴대용 음식으로 꼽힌 ‘미숫가루’는 파리번데기즙미숫가루, 천금미숫가루, 대추미숫가루, 산딸기미숫가루 등 그 종류가 16가지나 된다. ‘만두’는 무려 28가지다. 김치, 꿩, 숭어, 오리, 양, 게, 참새, 연밥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다. 다양한 전통음식의 향연은 입맛을 돌게 한다.

“돼지를 구울 때 냉수 한 동이를 옆에 뒀다가 굽자마자 물에 담기를 10여 차례 반복하고 나서 기름간장과 양념을 바르고 다시 구우면 매우 연하고 맛이 있다” 등의 ‘미식 레시피’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방대한 음식 레시피 속에는 서유구의 실학 정신이 녹아있다. “사람들의 입맛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 달라지며 세상에는 맛의 절대적 기준을 세워줄 역아(易牙)와 같은 명요리사도 없어 일률적으로 맛의 기준을 세울 수 없다”, “우리 음식이 중국과 다를 뿐만 아니라 중국의 요리법이 있다 한들 시골 생활에서 요리법까지 연구할 수는 없으므로 우리 풍속에 맞춰 알맞게 하면 그만”이라고 전한다. 특히 당시 조선 요리의 우수성과 문제점, 중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의 식문화의 우수성 등을 다국적이고 열린 시각에서 정확히 보고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풍석 서유구는 파주 장단이 고향이다. 수원 유수, 이조 판서, 호조 판서 등 고위 관직을 두루 역임하고, 실용학문에 심취했던 서명응(조부), 서호수(부), 서형수(숙부)의 가학(家學)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관념적 태도에서 벗어나 사람살이의 기본인 ‘건실하게 먹고 입고 사는 문제’를 풀고자 민중의 생활상을 세밀하게 관찰해 조선시대 최고의 실용백과사전인 <임원경제지> 113권을 저술했다. 풍석문화재단은 오는 2024년까지 총 67권을 완간할 예정이다.

정자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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