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경기도 박물관ㆍ미술관 다시보기] 파주 한향림옹기박물관

조상의 지혜와 美의 결정체… 민초들의 삶을 담다
소박하며 정감 있는 생김새·숨 쉬는 바이오 그릇 '새로운 평가' 최근 들어 더욱 사랑받아
2층 올라가면 실생활 사용된 옹기 소품 눈길… 앙증스러운 양념단지 주부 마음 사로잡아
1층 전시실 경기도·경상도·충청도·강원도·전라도서 생산 옹기 한자리… 지역 특성 담아내
한향림 관장 1987년 프랑스서 귀국후 옹기 모으기 시작…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힐링

1.대형 옹기들이 전시된 야외 전시장의 모습. 한향림옹기박물관은 1960년 말부터 플라스틱, 스테인레스의 등장과 주거 공간의 변화로 쇠퇴된 옹기 문화를 본존하기 위해 노력하고있다. 윤원규기자
1.대형 옹기들이 전시된 야외 전시장의 모습. 한향림옹기박물관은 1960년 말부터 플라스틱, 스테인레스의 등장과 주거 공간의 변화로 쇠퇴된 옹기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있다. 윤원규기자

숨 쉬는 항아리로 불리는 옹기는 된장과 고추장, 김치 같은 발효 식품을 만드는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다. 어디 그뿐인가. 쌀과 소금은 물론 때로는 귀한 책까지 보관했던 만능의 용기였다. 7080이라면 겨울날 밤새 수북이 내린 눈을 손으로 쓸어내고 늦가을에 묻어둔 김칫독을 열어 잘 익은 동치미를 꺼내 맛보던 정겨운 풍경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옹기는 한국인의 음식문화 중심에 있다. 김치와 된장은 옹기 없이는 상상할 수 없다. 장맛으로 한집안의 수준을 평가하기까지 했으니 우리 앞 세대가 옹기를 얼마나 소중히 여겼을지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독, 항아리로 불리는 옹기는 도기를 대표한다. 반면 청자와 분청사기, 백자는 자기를 대표하는 것이다. 도자기는 도기와 자기를 합친 것이다. 왕실과 귀족 문화인 자기는 친숙하지만 평민들의 그릇이던 도기는 오히려 잘 알지 못한다. 삼국시대부터 만들어진 옹기는 왕궁에서 백성들의 부엌에 이르기까지 계층과 지역을 넘어 널리 애용되었다. 옹기는 발효 식품 문화가 발달한 우리 음식문화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일본 자본이 대량으로 생산한 생활자기를 널리 유통시키면서 우리의 옹기는 소외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꾸준히 서민들의 생필품이었던 옹기는 산업화가 시작된 1970년대부터 식생활과 주거문화가 크게 변화하면서 사라졌다. 너무 흔했기 때문일까, 옹기는 너무나 빠르게 우리 곁에서 사라져갔다. 플라스틱과 스테인리스, 유리그릇이 등장하자 무겁고 거추장스럽다며 일부러 깨서 버리기까지 했다. 이제 시골에서도 장독대는커녕 옹기 한 점 구경하기 어렵다. 다행히 이런 아쉬움을 달래주는 곳이 경기도에 있다. 한국인의 멋과 맛이 배인 옹기를 한 자리에 전시하고 그 기능을 연구하여 옹기의 르네상스를 꿈꾸는 곳이다.

2. 작은 크기의 옹기를 전시한 1층의 소품관모습. 아기자기한 다양한 모습의 옹기를 만날 수 있다. 윤원규기자
2. 작은 크기의 옹기를 전시한 1층의 소품관모습. 아기자기한 다양한 모습의 옹기를 만날 수 있다. 윤원규기자

■ 옹기에 깃든 멋과 지혜에 반하다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의 가장 높은 언덕에 자리 잡은 한향림옹기박물관(관장 한향림, 이하 옹기박물관)이 바로 그곳이다. 세련된 디자인의 박물관 건물과 고풍스러운 옹기의 어울림이 절묘하다. 도예가이자 컬렉터로 활동한 한향림 관장은 한국 도자예술의 역사성과 경제적 가능성, 교육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2004년에 ‘한향림옹기박물관’을 개관했다. 도예과 출신의 한 관장은 대학시절 도자기를 만들면서 투박한 옹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프랑스 유학생 시절 유럽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순례하며 숱한 도자기 명품들을 보았으나 옹기가 지닌 매력을 넘어서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1987년 한국으로 돌아온 후부터 옹기를 모으기 시작했던 한 관장은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옹기를 수집하고 박물관을 열게 된 까닭을 이렇게 밝혔다.

“옹기는 선사시대 이후 인류의 일상생활 속에서 같이 숨을 쉬며 살아온 물품이다. 집집마다 장독대에 있던 항아리가 바로 옹기다. 플라스틱 용기가 나오기 전까지 옹기는 생활필수품이었다. 조상의 지혜와 미의식이 담긴 옹기들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정감이 가고 자연스럽게 힐링이 된다. 이런 옹기의 가치를 제대로 보존하고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수집을 시작했다”

“옹기 가운데 항아리는 지역마다 생김새가 달라 개성이 뚜렷했다. 일조량이 적은 북부지방의 항아리는 볕을 많이 받게 하기 위해 입구를 넓게 만들었고 반대로 일조량이 많은 남부지방의 것은 배가 부르고 입구가 좁았다. 지역성까지 뚜렷한 이 같은 개성의 옹기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에 사명감을 가지고 수집에 뛰어들었다. 그러곤 옹기를 제대로 전시할 수 있는 박물관을 짓겠다고 결심했다.”

한 관장이 옹기 수집에 열을 올릴 때 남편 이정호 옹기박물관 이사장이 함께했다. 그는 직장에서 은퇴하면서 아내와 같이 옹기 수집에 발 벗고 나섰다. 아내의 뜻에 따라 파주 헤이리예술마을에 옹기박물관 터를 잡고 사재를 털어 박물관까지 지었다. 옹기가 사라지고 있던 시기에 옹기의 매력에 빠진 부부 덕분에 우리는 한국인의 생활문화의 중심을 차지했던 옹기를 오롯이 만날 수 있게 되었다.

3. 파주 헤이리마을에 위치한 한향림옹기박물관은 한국옹기의 우수성과 조형미를 알리고자 2004년 3월 개관됐다. 조선후기부터 1950년대까지 제작된 다양한 옹기를 수집, 전시하고 있다.
3. 파주 헤이리마을에 위치한 한향림옹기박물관은 한국옹기의 우수성과 조형미를 알리고자 2004년 3월 개관됐다. 조선후기부터 1950년대까지 제작된 다양한 옹기를 수집, 전시하고 있다. 윤원규기자

■ 지역의 풍토와 역사를 담은 그릇

옹기박물관 양은영 학예연구원의 설명을 듣기 전까지 옹기가 많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전문가의 해설을 들으니 눈앞에 있는 옹기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정말 그랬다. 1층에 전시된 것은 1950년 이전까지 사용되었던 생활 옹기들이다. 옹기 앞에서 잠시 고향집 마당의 장독대와 어머니 얼굴을 떠올렸다. 이제 옹기를 관람할 자세가 되었다는 마음의 신호일까.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 경기도, 전라도에서 생산한 옹기를 구분 전시하여 그 지역의 특성을 살필 수 있도록 배치했다. 덕분에 관람객들도 옹기의 생김새가 지역의 풍토와 닮아 있다는 사실을 이내 깨달을 수 있다. 햇살을 더 많이 받기 위해 어깨를 넓게 만든 옹기, 배를 강조한 옹기, 옹기들은 입을 좁히거나 넓혀 지역의 풍토와 조화를 이루었다. 양 연구원의 설명처럼 전라도의 옹기가 가장 화려하고 세련되었다. 사람들이 호남을 예향이라 부르는 까닭을 알겠다. 친숙하다고만 여겼을 뿐 여태 잘 몰랐던 옹기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하나 둘 알아가는 즐거움은 박물관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잘 생긴 옹기 하나를 선택해 한국인의 자유분방한 미의식을 찾아낼 때까지 바라보길 권한다. 그 옹기를 매일 만지고 닦았을 조선의 여인네를 상상해도 좋고, 그 옹기를 능숙한 손길로 빗었을 늙은 옹기장이를 불러내 대화를 나누어도 좋겠다.

혹 옹기 뚜껑 안에 십자가를 새긴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옹기일 가능성이 높다. 조선 왕조가 천주교를 무자비하게 탄압하자 교도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었다. 쌀농사 짓기 어려웠던 신자들은 옹기를 구워 팔아 식량을 마련하며 어렵사리 신앙을 지켜나갔다. 반짝이는 옹기 배도 유심히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찾아낼 것이다. 어느 지역 어느 마을에서 만든 것인지를 밝히는 글씨를 새긴 옹기들도 여럿 전시되어 있다. 모양이 어떻든 절절한 이야기를 간직하지 않은 옹기는 단 한 점도 없다.

2층 전시실에는 실생활에서 사용된 옹기 소품을 비롯해 다양한 옹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3단지, 4단지 같은 양념단지는 과거가 현재의 주부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병아리 물병은 지금도 응용하면 좋은 과학적인 제품이다. 집안에 들어온 구렁이를 편히 살도록 만든 업단지나 시신을 담았던 옹관은 자연과 하나였던 한국의 옛 문화를 살피게 만드는 특별한 물건들이다. 목부터 허리까지 바느질한 것처럼 쇠심이 가득한 옹기가 멀쩡하게 서 있다. 옹기에 가로 세로로 박힌 수많은 철심은 깨진 부위를 이어붙인 흔적이다. 옛사람들이 옹기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겼는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검푸른 빛깔의 푸레독은 이름만큼이나 눈길이 가는 유물이다. 푸레독은 질그릇, 오지그릇과 함께 옹기의 한 종류인데, 가마에서 구을 때 잿물 대신에 소금을 사용한다. 잿물을 입히지 않은 그릇을 가마에 넣고 온도가 1100도 고온으로 올라가면 소금을 가마 속으로 뿌리고 가마를 밀폐시켜 구워낸다. 소금이 녹으며 잿물을 대신해 옹기 표면에 유리질막을 형성하면서 독특한 색감을 내는 것이다. 전시된 다양한 옹기들에서 소박하고 푸근한 옛사람의 마음까지 읽어낸다면 더욱 만족스러운 관람이 될 것이다.

4. 1층 상설 전시실의 모습 경기도, 경상도 등 전국의 옹기를 6개 지방으로 구분 및 체계적으로 정리, 전시하고 있다. 윤원규기자
4. 1층 상설 전시실의 모습 경기도, 경상도 등 전국의 옹기를 6개 지방으로 구분 및 체계적으로 정리, 전시하고 있다. 윤원규기자

■ 옹기는 다시 숨을 쉰다

최근 옹기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옹기의 현재화, 생활화를 향한 옹기박물관의 꾸준한 노력과 맞닿아 있다. 박물관에서는 매년 절기마다 전국의 옹기 장인들을 초대하여 기획전시를 열고 있다. 옹기 장인들과 옹기의 기능을 연구하고 새로운 디자인을 개발하여 쓰임의 폭을 넓히려는 노력을 쉬지 않는다. 옹기의 매력을 발견한 젊은 도예가들이 등장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이제는 일반인들도 옹기가 ‘숨을 쉬는 바이오 그릇’이란 사실은 알고 있다. 소박하며 정감 있는 생김새와 천진한 문양은 한국적 미를 살린 것으로 평가되어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의 문화가 새롭게 조명받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옹기도 그중의 하나가 되리라 확신하며 옹기의 찬란한 변신을 기다린다. 옹기박물관의 자매 박물관인 ‘한향림 현대도자미술관’이 바로 곁에 있다. 파블로 피카소와 장 콕도 같은 서양 예술가와 김은호, 김기창, 장욱진 같은 우리나라의 유명 예술인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곳이다.

김준영(다사리행복학교 행복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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