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많이 흘러도 걱정이 떠나지 않는 것이 삶이라 했던가. 그런 걱정거리를 다소나마 잊으려고 그리고 삶의 즐거운 끈을 놓지 않으려고 은퇴 후 취미로 시작한 것이 텃밭이다. 170여년 전에 미국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1817~1862)는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일, 명예, 돈과 통념의 노예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욕심이 갈수록 쌓여가는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소로우가 전한 말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이 말은 텃밭에 있는 그 시각에도 끝없는 울림으로 다가온다.
비싼 평택 땅에서 내 자투리 땅 하나 마련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 지인을 통해 적절한 텃밭을 임차 받았다. 내 놀이터를 제공해 준 그 지인이 늘 고맙고 감사하다. 조석으로 가보는 텃밭, 시골 태생으로 텃밭 식물에 익숙한 나로서는 쉬운 일이었지만 땅을 일구는 작업만큼은 구도자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삽질을 하고 거름을 날랐다. 땀과의 전쟁을 치루면서도 씨앗을 뿌리는 즐거움은, 그 씨앗이 새싹으로 나오는 것을 목도하는 즐거움은 세상 어느 즐거움과도 바꿀 수가 없다. 텃밭은 나에게 놀이터다. 무념무상이고 집중 할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 수 있는 곳이고 바람과 만날 수 있고, 햇살과 면접 할 수 있고, 흰구름 보면서 유년시절의 꿈을 곱씹어 볼 수 있는 귀한 터전이다. 그러니까 텃밭에 가면 속세를 떠난 기분이고 자연과 오롯이 하나가 되는 기분을 만끽한다.
나는 텃밭을 시작한 이래로 별일 없으면 아침저녁으로 텃밭에 간다. 식물을 가꾸는 것도 일이려니와 더한 것은 최고의 즐거움(知子 不如好子 好子 不如樂子)이기 때문이다. 출근하기 전에 자동차로 5분여 떨어진 곳에 위치한 텃밭에 출근해서 아침시간을 그들과 함께 즐기고 퇴근 후 바로 텃밭으로 향하여 거기서 평택의 멋진 노을과 조우한다. 우리 삶이 그러하듯 끝없는 관심과 노력이 없다면 텃밭일지언정 제대로 유지하기란 사실상 어렵다. 인간관계도 그렇다. 끝없는 관심과 행동이 뒤따라야 관계를 유지하듯이 말이다.
처음 몇년전에 텃밭을 시작 할 적에는 눈에 보이는 것, 사람들이 좋다는 것은 모조리 다 심었다. 그런데 해가 거듭될수록 꾀가 생겨 덜 고생하고 효율적인 수확을 위하여 전략작물로 몇가지만 엄선하여 가꾸는데 나는 고추, 마늘, 서리태 등을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가꾸고 있다.
세월을 보내면서 진정 삶의 가치를 어디에다 두는가는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나는 더 이상의 삶의 욕심은 없다. 주변에 피해주지 않으며 두런두런 이웃들과 어울리며 나와 주변에 삶의 생채기가 생기지 않게 흐르는 강물처럼 그렇게 흘러가고 싶다. 후반으로 미끄러져 가는 중년의 나이, 더 이상의 욕망의 변곡점이 없기를 소망해 본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호숫가 월든 원두막이 아니라도 조그마한 텃밭에 그늘막이라도 설치하여 자연과 더불어 자기만의 멋진 인생의 철학을 심고 가꾼다면 그 인생은 이미 가치 있는 삶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그러하고 싶어서 오늘도 텃밭으로 향한다.
이종원 시인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