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세자 탄생기념 축제에서 루이 14세는 온몸을 눈부신 금빛으로 칠하고 1만5천명의 국민 앞에서 발레를 추었다. 태양왕으로 불리게 된 사건이다. 루이 14세는 절대왕정의 기린아로서 궁정문화를 꽃피우고 예술을 장려하였다. 가발과 화려한 스카프, 스타킹에 이에 하이힐까지, 색색으로 빛나던 이 정복왕의 옷차림은 지금 보면 다소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지만 실상 당시 유럽의 교양과 사치스러운 귀족 문화를 실체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프랑스에서 멀리 떨어진 조선의 젊은 관료는 학이 새겨진 흉배에 관대를 두르고 사모를 쓰며 백성을 위해 분골쇄신하리라 매일 다짐했을 것이다. 흥선대원군이 갓 크기를 줄이려 했을 때 극렬히 반대하던 선비들은 갓이 사대부의 기개와 위신을 드러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김구의 두루마기와 이토 히로부미의 유카타가 대비되듯,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침략군 최종 보스였던 히틀러의 제국주의 군복과 스탈린의 인민복, 루즈벨트의 미국식 양복은 같은 시대의 다른 선악을, 혹은 거대한 이해관계를 선명히 대변하였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복장이 다른 것은 각각의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며 각 문화는 인간의 문화, 즉 인문이 된다.
인문은 인간의 문화(人文)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무늬(人紋)이기도 하다.
인문(人紋)은 그렇게 복장으로 나타나며, 복장은 인문을 새로이 만들어낸다.
인문은 편벽된 것이 아니다. 다른 문화의 복장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편협해서는 안된다. 제레드 다이아몬드 박사가 명저 ‘총, 균, 쇠’에서 지구상의 각 종족은 상대적으로 우수하거나 열등하지 않으며 해당 자연환경과 상황에 맞는 문명을 발전시켰다고 실증한 것처럼 복장 역시 그러하기 때문이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죽어가는 복제인간 로이가 안드로이드 사냥꾼 릭 데커드에게 남긴 마지막 대사는 만만치 않은 화두를 던진다. “난 너희 인간들이 믿지 못할 것들을 봤어. 오리온16의 어깨에서 불타오르는 강습함들. 탄호이저 게이트 곁의 암흑 속에서 반짝이는 C-빔들도 봤지. 그 모든 순간들이 곧 사라지겠지. 마치 빗속의 눈물처럼”
인간보다 우수한 존재로서 인류가 보지 못한 무수한 것들을 봤던 복제인간이라면 우리 시대의 복장에 대해 뭐라고 평가할 것인가.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의 복장은, 운명을 가름하는 판관의 복장은 얼마나 자유로워야 하는가. 남자들은 반바지나 치마를 입고 출근하면 정말 안되는 것일까. 복장에 대한 인문학적 질문은 많지만 코로나19 시대 최선의 복장은 서로 간 감염을 막는 ‘마스크’라는 점은 우선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 지금은 마스크가 아름답다.
김성훈 손해보험협회 중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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